덕암 칼럼 해보지 않은자가 망친다
2026.06.19 14:20:31

건설현장에서 일하는 사람을 건설근로자라 부른다. 분야별로는 설계, 측량, 부터 땅을 파는 토목, 골조를 올리는 철근과 콘크리트, 그리고 구조물이 완성되면 비계라는 시설물을 설치해서 외벽을 바르거나 타워크레인을 통해 각 층별로 내부공사를 진행한다.
전기, 소방, 샷시, 미장, 천장의 덴조, 바닥의 타일, 그리고 이어지는 각종 인테리어 집기들, 최종 바닥의 조경공사와 안전점검까지 마치고 나면 준공검사를 받게 되는 것이 대략 건설현장 중 건축에 해당되는 내용들이다.
물론 건설에는 단순히 건축물 짓는 것 외에도 항만, 터널, 교량, 공항, 등 다양한 분야가 있지만 갈수록 관련 분야의 기술력은 눈부신 발전을 거듭하고 있다. 모두 감리 감독이 붙어있고 때가 되면 준공검사를 나오는 지자체의 깐깐한 현장 검사도 있다.
하지만 짜고 치는 고스톱이라고 어떤 부분이 문제인지는 시공을 맡은 사람들이 더 잘 안다. 가령 아스팔트를 포설하는 과정에 비비라는 굵은 입자를 먼저 깔고 웨아링 이라는 고운 입자의 코르타르를 깔게 되는데 그 두께가 5cm 만 얇게 깔아도 전 구간에서 줄일 수 있는 아스콘 물량은 상당하다.
그러다 검사가 나오면 제대로 깔린 특정 구역만 구멍을 뚫어 두께를 측정하는 일명 보링 테스트를 거쳐서 준공검사를 내주는 것인데 특정 지점에 표시를 하여 검사하고 줄인 공사비는 전날 담당 공무원과 업자들이 형님 동생하며 룸 싸롱에서 기울인 양주잔에 포함된 것이다.
지하경제는 그렇게 개인의 돈이 아닌 써도 되는 접대비로 성장하는 것이니 공생의 묘미란 참으로 오묘하다. 어디 그 뿐이랴
경쟁 사회속에서 저가에 낙찰받은 100만 원 짜리 공사를 철근값, 철근을 엮어 매는 반생비, 인건비 모두 정상적으로 하려면 남는 게 없으니 한 칸 건너 한 가닥 또는 서너 칸 건너서 한 가닥씩 매니 레이콘 타설 시 밀려나는 건 기본이고 그렇게 엉성하게 굳어버린 기둥이나 벽은 적당히 미장공들이 시멘트를 발라버리고 그 위해 석고보드나 판넬로 일명 덧방치기를 해버리면 입주민들만 모르는 일이다.
천정 덴조 위에는 남은 건축폐기물 얹어 덮어버리고 시공 과정에 화장실 부족으로 아무데나 배설한 흔적의 오물 아파트가 물과 얼마전이 일이다. 50년 전에도 그러던 것이 최근 삼성역 지하차도나 김포 순살 아파트 건설현장에서 그러고 있으니 인간이 사는 한 비리란 근절되기 어려운 것이다.
건설사에서 퇴직하면 일선에서 물러나야 함에도 하도급을 차려 협력업체로 등록하니 가격이나 기술 면에서 진정한 경쟁력을 갖춘 협력사들이 발 디딜 틈이 없는 것이고 갑을 간에 이해관계가 설정 되어 있는 상황에 무슨 감독이 필요할까.
특히 정치권의 압력으로 건설현장에 들어선 근로자식당 일명 함바 집은 아파트 한 현장만 운영해도 아파트 한 채가 생긴다는 말이 있을 만큼 이권이 개입되고 현장에 사용되는 모든 철물이나 잡 자재 또한 특정 권력층의 소개로 자리잡아 돈벌이를 하니 그렇게 번 돈이 정치권에 한 푼도 전달되지 않았다면 누가 그 말을 믿을까.
돌고 돌아서 돈이라 했다. 용의 선상에 드러나지 않았을 뿐이지 인허가권을 가진 공무원과 그 공무원을 행정감사 한답시고 잡 들이 하는 지방의원들까지 거미줄 같은 이해관계를 수박 겉핧기로 수사하는 경찰이 얼마나 제대로 할 수 있을까. 세상은 그렇게 돌아가는 것이다.
오늘은 제 45회 건설의 날이다. 필자가 하는 말이 완벽하게 맞지 않을수도 있지만 이해를 돕기 위함이니 독자님들의 유도리가 전제되어야 한다. 아직도 남아 있는 건설현장의 일본어들이 난무하다. 가장 먼저 노가다라고 불리는 명칭인데 도카타에서 비롯된 말이라고도 한다.
통상의 사람들은 사업에 실패하거나 마땅히 할 일이 없을 때 노가다나 한다고 쉽게 말한다. 하지만 그 노가다 현장은 이미 외국인 근로자들이 잠식한 지 오래이며 이제는 반장급 외국인에게 작업 지시를 받아야 할 정도다.
그리고 노가다 현장에서 가장 사고율이 높은 연령대가 “노가다나 하지”라는 비전문성 인력이고 주로 퇴직 이후 마땅한 일거리를 찾지 못한 50대 후반이나 60대가 차지한다. 다시 말해 그리 쉽게 볼 분야가 아니라는 뜻이다. 건설현장은 지난 50년 동안 많이 바뀌었다.
필자가 처음 노가다 현장에서 곡괭이와 삽을 잡았을 때가 14살 때였다. 일명 호리가다라는 상하수도 매설작업용 굴착 공사를 직접 인력으로 파는 일이었는데 지금은 소형 굴삭기가 대신한다. 해를 거듭할수록 근로 분야도 발전했다.
15살 때는 댓빵이라고 철판 양쪽 위에 두 사람이 곽삽을 들고 한 번씩 모래 자갈을 섞은 일인데 한판 씩 비벼낼때마다 벽돌 수백장을 쌓는 일의 첫 과정이다. 하루 20판 정도를 비비고 나면 양 팔뚝은 람보가 눈을 내리깔 정도로 강해진다.
16살 때는 지름 30cm 정도의 목재와 목재를 굵은 철사로 연결하여 건축물 외부 시설물을 설치하러 다녔다. 요즘 말로 비계라고 한다. 물론 추락해서 다친 적도 있었고 수년간 밤새 현장을 지키다 무방비 폭력에 노출되어 곤욕을 치른적도 많았다.
18살까지 건설현장에서 모든 분야에 종사하다 보면 이른바 잔뼈가 굵어지며 겪은 경험들은 훗날 훌륭한 훈련과정이었다.
런 과정은 취재 활동에도 많은 도움이 됐다.
설계도에는 신재를 쓰도록 되어 있어도 막상 현장에는 중고재료를 쓰는 일이거나 특히 환경 관련 용품들은 사고방지를 위해 재사용이 금지 되어 있음에도 이전 현장의 흔적들이 적나라했다.
장갑 몇 봉지에 수 십 만원씩 팔러오고 장애인단체나 동네 폭력배는 물론이고 비산 먼지 난다며 환경 관련 기자들이 설치면 봉투라도 챙겨 보내던 시절도 있었다. 이쯤하고 그런 노가다 현장을 삽질 한번 안해 본 사람들이 엎었다 뒤집었다 생난리를 친다.
윤석열 정부때 원히룡 장관이 건설노조를 잡들이 했다가 말았고 산재 사고 날때마다 이재명 정부가 중대재해 처벌법을 들먹이며 패가망신 시키겠다고 하자 건설사들이 전국 건설현장 올 스톱이라는 극약처방으로 반항했다.
뭘 알고 해야 현실적 해결방안이 생기는 것이지 책상머리에 앉아 머리만 굴린다고 국민들이 박수 쳐주지 않는다. 그리고 그런 광풍에 당장 먹고사는 일이 막막해진 노가다 일꾼들은 어디로 가란 말인가.
덕암 김균식
심수연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