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암 칼럼 절대 늙지 마라
2026.06.15 13:27:44
늙어서 천대받고 무시당하고 정신이나 육체가 흐려지지 않을 자신 있는가. 그렇다면 몰라도 그렇지 못하다면 절대 늙지 말아야 한다. 호적상 나이를 먹든, 신체적 기능이 무력해지든 각 개인 별로 다르겠지만 젊고 팔팔한 상태로 버텨야 한다.
물질문명이 발전하고 세상이 달라져도 자신만큼은 변하지 말고 계속 검은 머리에 탱글탱글한 피부에 튼튼한 치아와 낭랑한 목소리를 유지해야 한다. 특히 돈 없이 늙는다면 범죄나 마찬가지다. 자신의 몸 하나 돌보지 못하면서 자식이나 주변인들에게 민폐를 끼치고 있다면 조용히 스스로를 돌아볼 시간을 가져야 한다.
마지막 숨을 거두는 순간까지 머리에 비듬 하나 없고 입안에 구린내 하나 안 내며 생리적 배설을 깔끔하게 할 수 없다면 늙지 말아야 한다. 항상 젊었다가 어느 날 깔끔하고 멋있게 한순간 삶을 마감할 수 있어야 한다. 참 웃기는 전제다.
이 세상 어느 누구도 태어날 때는 어머니 자궁에서 나오는 것이고 죽을 때는 스스로가 아무런 기력이 없어 육체의 온갖 배설물이나 분비물을 흘리고 가는 것이지 영화 속의 한 장면처럼 할 말 다하고 폼 나게 갈 수 있을까. 때가 되면 그냥 가는 것이 인생이고 생명을 가진 모든 동, 식물들의 한계다.
결론적으로 사람이 스스로 생명의 한계를 느껴 임종을 맞이하기 까지 걸리는 시간은 그리 오래 걸리지 않는다. 따라서 사람이 태어난 곳은 어머니지만 마지막 몸부림을 챙겨줄 수 있는 것은 사람이어야 한다.
물론 객사도 할 수 있고 원치 않은 상황에서 제 몸 하나 간수 못하는 경우도 생기겠지만 지금 나대는 정치인들이나 천년만년 살 것처럼 온갖 비싼 옷과 화장으로 치장을 해도 벗겨놓고 보면 참으로 볼 것 없고 추한 게 사람이다.
동물을 키워보면 거위나 고양이나 하다못해 숲속의 다람쥐조차도 세제나 도구 없이 깨끗하다. 오늘 이렇듯 사설이 긴 것은 반대급부로 비유하여 인간의 늙음에 대해 너무 무시하거나 천하게 여기지 말아야 한다는 것을 역으로 논하고자 하는 것이다.
데리고 다니는 강아지 똥은 비닐 봉투까지 챙겨가며 치우지만 늙은이의 침은 더럽다고 질색을 하는 것이 현실이다. 키우는 자식은 무슨 요구를 해도 최선을 다해 들어주지만 낳고 키우고 분가할 때까지 온갖 정성을 다한 부모에게는 조그만 요구에도 부모 노릇 못한다며 분노를 감추지 못한다.
자신은 어릴 때 열 번을 물어도 짜증 없이 답하던 부모가 두 번만 물어도 노망들었냐며 핀잔을 준다. 사람은 태어나서 10가지를 남기고 1 가지를 가져간다.불가에서는 온갖 경우를 다 들어 108번뇌도 있다 하지만 필자가 짧은 삶을 살아보니 대략 남길 것과 가져갈 것이 구분된다.
가장 먼저 먹는 건 참아도 싸는 건 못 참는다. 노인 요양병원이나 요양원을 다녀보면 피할 수 없는 것인데 때론 간병인한테 미안해서라도 적게 드시는 경우가 많다. 마음대로 죽을 수도 없는 생존 본능이 남은 삶의 버팀목이라면 내일 아침 눈뜨고 싶지 않은 당사자의 의지는 별개의 문제다.
다음은 돈인데 돈이 모든 걸 해결하는 것 같지만 돈을 쓸 기력이 있을 때 그런 것이지 있어도 소용없는 날은 그리 오래 걸리지 않는다. 모든 건 때가 있다 치아가 멀쩡해야 함께 고기라도 씹고 기력이 있어야 여행이라도 같이 다니는 것이며 설날 세뱃돈도 백일 돌 잔치나 환갑 팔순도 모두 때가 있는 것이다.
지나면 돌이키지 못할 일이 인생의 배움이자 부모에 대한 정성이다. 다음은 뜻인데 사람이 후세에게 득이 되는 공을 남기면 위인이라는 명칭을 얻게 된다. 다음은 노래다. 민요부터 동요, 군가, 가요, 오페가, 등 많은 노래들은 작사, 작곡, 가수, 이름만 남겨도 후손들이 흥얼거리며 잊지 않는다.
그리고 흥이다. 인생에 있어 윤활유 같은 전재인데 문화, 예술, 체육의 모든 행위들이 여기에 속한다. 밥만 먹고 살 수 없기 때문이다. 다음은 정이다. 동물도 정이 있겠지만 인간은 삶을 영위하는 과정에 부모 형제 자손은 물론 벗과 혈육과 전우와 이웃이라는 어울림 속에서 살기 때문에 생기는 자연적인 감정이다.
그래서 나온 말이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라는 말이다. 그리고 글이다. 글은 필자의 개인적 취향이자 벗이기도 하지만 기억에 의존하는 것은 한계가 있고 기록에 남긴 것은 언제든 다시 볼 수 있는 페이퍼 타임머쉰이다. 그러기에 책에 길이 있다 하고 읽는 글에서 쓰는 글을 남긴다면 그만한 가치가 없다.
다음은 자신도 모르게 짓는 업이다. 뱀이 엄마 개구리를 잡아먹으면 아들 개구리에게 죄를 짓는 것이지만 뱀 자신에게는 당연히 먹이에 불과한 것과 같다. 자신은 자신의 생존을 위해 남에게 피해를 줄 수밖에 없는 것이 현대 사회구조다. 싸게 사서 비싸게 팔았는가.
생산원가에 인건비와 임대료를 보태고도 남도록 남의 돈을 받았는가. 그것도 합법적인 사기라면 사기다. 그리고 사람이 살면서 여가 남을, 남이 여를 좋아하고 종족 번식의 본능으로 사랑을 나누었다면 신은 그에 대한 결실을 주었다.
만약 사랑이라는 행위만 하고 임신과 출산이 이어지지 않았다면, 그리고 사랑을 나누는 과정에 남자에게도 여성 못지않은 산통이 주어졌다면 아마 지금쯤 인류는 멸종되고 말았을 것이다. 그래서 9번째가 자손이다.
끝으로 남기는 것은 화장터에서 유골함에 담아주는 한줌의 재거나 매장으로 묻혀 다시 흙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그렇지만 한가지 망자가 가져갈 것이 있다면 바로 혼이다. 존재감에 대한 영적 영역인데 스스로만 느끼고 가는 감정이자 전부이고 먼지보다 작은 존재임을 알게 되는 순간이다.
오늘은 10년째 기념하는 노인학대 예방의 날이다. 예방이란 발생하기 전에 막자는 뜻인데 실제 이미 진행 중인 경우가 많으니 어쩔 것인가.
오죽하다는 말은 심하거나 대단할 때 쓰이는 말이며 여북하다는 말은 어떤 극한적 상황에서 그럴 수밖에 없을 때를 말하는데 오죽하면 이런 날이 정해졌으며 여북하면 지키려는 필요성이 부각되었을까. 인간의 삶은 마치 봄여름 가을 겨울 같은 변화와 같다. 독자님은 현재 어느 계절에 머물고 계신가.
혹여 늦가을 쯤 이라면 겨울준비를 위해 하나 둘 씩 무성했던 잎사귀를 붉은 단풍으로 만들어 내려놓을 때다. 돈이나 명예나 건강까지 다 유지하려고 애쓰면 쓸수록 삶에 대한 미련과 애착이 남아 떠나기 어려운 것이다. 그래서 때를 알고 떠나는 사람의 뒷모습이 또한 아름답다 하지 않았는가.
그것이 내려놓음인데 한겨울 폭설을 못 이겨 굵은 가지가 부러진 소나무를 보며 푸르름을 유지하려는 것이 얼마나 무모한지를 보았다.
덕암 김균식
김균식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