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암 칼럼 과거는 현재의 거울이다
2026.06.10 14:33:54

지금으로부터 39년 전일이다. 1987년 6월 10일 필자가 군에서 말년 병장으로 복무 도중 외출을 나와 부산 진구 개금동 대로변 앞으로 나왔을 때 거리는 차량 대신 인파로 가득했다.
당시 분위기는 군복을 입었다는 이유만으로 일부 과격한 군중들의 공격대상이 될 수 있는 상황이었고 일단 위기를 모면하자는 판단에 부대로 복귀했다.
군중심리, 어쩌면 옳고 그름을 따지기 이전에 거대한 흐름에 파묻히면 그 어떤 설명도 변명이 될 것이고 평소 충정훈련으로 군중들을 해산시키는 연습이 몸에 베인 입장에서 결코 자유롭지 않았다.
전역 후 알고 보니 6.10민주항쟁의 절정이었고 그로부터 19일 후 노태우 민정당 후보가 직선제를 선언, 그해 12월 16일 5년 단임제의 제 13대 대한민국 대통령으로 당선됐다.
당시에는 국민들의 저항이 성공한 줄 알았다. 결국 이름만 달랐지 전두환이나 노태우나 군인들이기에는 마찬가지였고 대한민국의 민주화는 다시 5년이 지나서야 14대 김영삼 대통령부터 시작된 것이다. 당시 6.10 민주화 운동의 상징적 전리품이 6.29 선언 이었다.
앞서 6.10 민주항쟁의 원인부터 찾아보면 4.13 호헌조치가 불씨였고 헌법을 보호하자는 호헌에는 대통령 간선제가 포함되어 있었다. 소위 통일주체 국민회의라는 장충 체육관 선거를 통해 대통령을 더하겠다는 것이 국민들의 공분을 산 것이다.
그 당시 권력에 대한 욕심이 화를 불러일으킨 셈이다. 당시 전두환 전 대통령은 공도 많았지만 과도 많았다. 정치인이 아니라 군인이 통치하는 군부독재는 서슬퍼런 공안정국으로 사실상 언론통제, ,야당 인사탄압, 공권력 남용, 등 다양한 오욕의 흔적을 남겼다.
역사의 수레바퀴는 돌고 돈다. 세월이 39년 이나 지나 수도 서울 한복판인 송파구 올림픽 공원 핸드볼 경기장 앞에서 유사한 시위가 투표 이후 5일째 이어지고 있다. 재선거를 요구하는 군중들의 집회 형태는 자유, 그 자체다.
일부 방송국에서 참가자 숫자를 축소해 보도하는 일이 군중들의 강력한 비난을 사기도 했다. 문제는 인천 유정복 시장이 밝힌 동일투표 숫자가 전국 12곳에서 같이 일어났다는 점이다.
광주 광산 송정1동과 고흥군 금산면에서도 민주당 민형배 후보와 국민의힘 이정현 후보가 나란히 1401표:120표로 같은 개표 숫자를 나타냈고 이런 현상은 신안, 여수, 화순, 강진, 함평, 장성, 보성, 신안에서도 똑같은 개표 숫자로 나왔다.
우연도 이런 우연이 없는데 선관위에서는 우연이라고 밝히며 계속 버티고 있다. 특히 공직선거법 제 150조에는 투표 용지에 일련번호를 인쇄하도록 정해져 있지만 부족분이 도착하자 필기로 번호를 적는 일이 벌어졌다. 이 자체만으로도 선거법 위반이다.
그동안 기입에서 인쇄로 바뀌었는데 이를 어긴 것이다. 이런 현상에 대해 선관위에서는 이런 행위들이 위법논란이 있다거나 소지가 있는 것은 몰라도 위법이라고 단정 지을 수는 없다고 답변했다. 소지는 있지만 단정 지을 수 없다는 것인데 말 잔치로 해명을 하니 더욱 화를 돋구는 일이 되고 있다.
또한 등록한 후보들 전체이름이 인쇄된 투표용지와 여야 정당 2명만 기재된 투표용지가 곳곳에서 의혹을 제기하자 이에 대한 해명도 아직 전무한 상황이다.
9일 현재까지 밝혀진 바로는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공식적으로 밝힌 투표용지부족 투표소는 총 91곳으로 그 중 26 곳이 투표를 중단했다가 다시 시작한 것으로 드러났다. 세부적으로는 서울 42곳, 경기 23곳, 인천 11곳, 대구4, 부산3, 울산2, 충북1, 전남2, 경남2로 밝혀졌다.
단순 실수라기에는 지나친 흔적이다. 매일 하는 것도 아니고 2년마다 한 번 하는 선거인데 평소 뭐하다가 용지 부족 현상을 보였을까. 백번 천번 양보해서 사전투표가 많고 당일 투표가 적을 것 같아 적게 인쇄했다면 그렇게 아낀 인쇄비용이 얼마길래 이런 상황을 초래했을까.
이쯤되면 문제점의 원인을 단순인쇄 부족으로 치부하기엔 설명이 역부족이다. 이쯤되면 개표가 아니라 개판이다. 야당은 그냥 넘어갈 상황이 아니라며 공격 수위를 늦추지 않았다. 국민의 힘은 거의 자유와 공정성을 훼손했다며 서울특별시장 선거를 무효로 한다는 취지의 선거소청서 초안을 올렸다.
선거소청은 선거 무효소송으로 가기 전 거치는 절차로서 선거일로부터 2주 안에 제기해야 하며 10일까지 서울 시민 공동원고 60여 명을 모집한 뒤 11일 소청을 제기하겠다고 밝혔다. 소청이 받아 들여질 경우 재선거 가능성이 열릴 수 있지만 기각하거나 각하할 경우 대법원에 위헌법률심판 제청을 신청하겠다는 방침도 밝혔다.
전반적인 분위기가 39년 전 과거로 돌아간 듯 하다. 일각에서는 이러다 말겠지 하며 두고 보자는 방관자도 있고 또 다른 일각에서는 이번에는 거대한 밀물이 보이는 것 같다며 특정 집단의 주도적인 집회 시위가 아니다 보니 기한이나 타협 선도 없는 것이 더 중대한 상황을 초래하고 있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한가지 다른 점은 1987년 6.10 민주항쟁은 군사독재 타도라는 대의 명분이 있었기에 국민적 공분이 거대한 태풍을 일으켰다면 지금은 정치인이 권력을 잡고 있고 이른바 좌파들의 지지세력이 만만찮은 점을 고려해 볼 때 자칫 내란의 소지가 있다는 점이다.
특히 그 당시는 신문이나 소문에 의존했지만 지금은 첨단 과학이 수 천 만명의 동선까지 죄다 파악할 수 있는 시스템이 완성되어 있다는 점과 권력이 보여준 모든 과정을 전제해 볼 때 국민 안위가 참으로 염려된다는 점이다.
역사를 돌이켜 볼 때 명성황후 민비의 사치와 퇴폐풍조, 매관매직으로 나라가 어지럽고 이를 못 견딘 백성들이 민란을 일으켜 궁궐에 침입했을 때 외국군을 끌어들여 자국민을 살육한 시절도 있었다.
권력 유지를 위해서라면 몽골군으로부터 수 십년 자국민들이 온갖 수난을 겪고 있을 때 강화도에 처박혀 연일 호의호식하며 해상으로 세금을 징수하는 세월도 수 십 년이었다. 지금까지 역사를 감안할 때 한치 앞이 안개 정국이란 말을 이럴 때 두고 하는 소리다.
덕암 김균식
김균식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