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암 칼럼 본 자보다 들은 자가
2026.07.08 15:34:34

어떠한 사건이나 실체를 직접 목격한 자보다 전해 들은 자가 더 정확하고 확신에 찬 주장을 한다면, 그래서 그 말이 설득력을 얻고 제 3자에게 전파되고 그걸 들은 제 3자 가 4자, 5자에게 전달하여 그 내용의 진위와 무관하게 절대다수가 믿는다면 가설이나 추설은 진실이 된다.
그렇다면 한번 사람의 입을 떠난 허위의 내용에 해당되는 당사자는 어떤 상황에 처해질까. 물론 소문은 돌고 돌아 맨 나중에 안다. 결코 수습될 수 없는 말의 책임은 사람의 귀를 통해 다시 입으로 확산되는 과정을 역으로 다시 번복해야 하는데 각자가 임의로 판단한 말을 무슨 수로 뒤집을 수 있을까.
그래서 혀는 손끝 못지않게 조심성을 요구하고 있다. 작금의 대한민국을 보면 진실과 허위가 뒤범벅이 되어 어느 것이 진실인지 구분조차 하기 어려운 일들이 점차 늘고 있다.
가령 3명이 산에 올라가 2명이 호랑이를 봤다면 그 산에 호랑이가 사는 것이고 그 말을 들은 사람은 살을 보태 한 두 마리가 아니라 무리를 지어 다닌다고 본 것보다 더 정확히 말한다.
대충 과장을 하면 수습이 될텐데 타인의 관심을 끌기 위해 매우 정교하게 표현을 하니 정확히 틀린 내용이 확산되는 것이다. 문제는 호랑이가 아니라 일국의 과거나 역사적 사건 등 객관적이고 명확한 사실에 근거하여 기록되어야 할 사안이라면 상황은 달라진다.
가령 6.25 전쟁을 북침이라고 말하기 시작한 사람들이 득세하면 북침이 되는 것이고 남침한 쪽이 주적이 아니라는 사람들이 많아지면 주적의 실체는 북한이 아니라 국가에 위해를 가할 세력이라는 애매모호한 말로 북한이 아닐 수도 있다는 결론이 지어진다.
그러나 좀 더 흐지부지 해지면 아예 북한이 아니게 되는 것과 같다. 가령 전두환이라는 한 사람을 조명 함에 있어 그의 모든 공은 빼고 과만 살을 붙여 인민재판에 올리면 천하에 둘도 없는 악인이 되어 죽어서도 묫자리 하나 없는 신세로 전락하는 것과 같다.
반대로 아무리 부를 축적하고 악행을 저질러도 선으로 포장하면 노벨평화상까지 받고 자자손손 구국의 영웅으로 묘사되는 것과도 일맥상통하다.
그 뿐인가 한가지 사건을 두고 폭동이라는 낱말만 써도 법적 처벌을 받는가 하면 실체에 연결되지 않더라도 결부시키면 실체와 같은 효과로 처벌 대상이 되는 일도 벌어졌다. 비단 배재고 논란 말고도 충암고가 그러했고 무안공항을 제주항공으로 표기해야 하는 일도 그러했다.
광주에 대한 영화 택시 운전사나 서울의 봄, 26년 등은 천만 관객을 동원하고 소재에 따라 노벨 문학상도 수상하지만 꾸준히 재조명되는 전두환 대통령이 업적은 마치 불온서적 취급하듯 사회적으로 어둠의 자식으로 취급당한다.
1980년이면 당시 시민군으로 활동하던 연령층이 20대 라고 가정할 때 최하 1960년생 이하여야 한다. 그런데 현장에 있지도 않았던 사람들이 더 사실감 있게 말을 하고 유공자 명단에 포함되었다면 그 명단을 공개되어야 마땅한 것인데 의문조차 품을 수 없는 것이 작금의 현실이다.
현행법 307조 1항을 보면 공연히 사람의 명예를 훼손하여 피해를 준 사실이 인정되면 징역형에 처하도록 정해져 있다. 성립조건으로는 사회적 활동을 통해 명성이 높을수록 그 해당 범위가 크며 단수가 아닌 복수의 범행 증거가 제시되면 공연성이 포함되므로 성립되는 죄명이다.
특히 그 내용이 허위일 경우 동법 2항에 적용되어 더 큰 처벌이 내려진다. 단 고소인의 합의가 병행되면 즉시 기소권이 종료되는 반의사 불벌죄다. 문제는 현재 사회적으로 통용되는 명예훼손죄와는 별개로 정보통신법이라는 광범위한 범죄영역이 갖는 특수성이다.
앞서 거론한 것처럼 허위로 사람을 모함하여 명예를 훼손하는 일은 그나마 대법원 판례적용이라는 언덕이라도 있지만 관련 법규를 해석하기에 따라 이현령비현령으로 적용되는 7월 7일 자 정보통신법 개정안의 발효 시점이 시작됐다.
점차 시간을 두고 하나둘씩 표시 안 나게 표현의 자유를 잠식할 경우 마치 냄비속의 개구리처럼 감각이 둔해져 종래에는 죽음조차 느끼지 못한다는 점이다. 대안을 논하자면 2가지다 들은 걸 본것처럼 말하는 자는 그 말을 어디서 들었는지 대라 하고 대지 못하면 책임을 지우면 된다.
그리고 누군지 말하면 꼬리를 물고 들어가 2사람 만 넘으면 단수로 적용되므로 고소장을 제출하면 된다. 그리고 절대 합의 안 봐주고 구속까지 끌고 가야 다른 사람이 함부로 입에 올리지 못한다.
중간에 합의 봐주면 일사부재리의 원칙에 따라 같은 사건을 2번 고소할 수 없으니 놓친 고기가 다시 돌아올리 없다. 그러므로 소문으로 힘들어하는 사람의 원인은 자기관리 부족보다 화근을 사전에 방치한 죄가 더 크다고 볼 수 있다.
공격도 방어의 일종이고 방어에 방만한 허물도 크기 전에 잡아야 가능한 일이다. 임진왜란을 겪었던 선조가 그랬다 편애는 소수의 자만을 낳고 박애는 다수의 무질서를 낳는다고 했다. 로봇이 인간의 몸을 편하게 했다면 AI는 인간의 지능을 편하게 했다.
정치가 국민을 지배함에 있어 특정 정당의 특정 정치인이 권력을 가진다면 그는 자만해질 것이고 표를 위해 다수의 편만 손을 들어주면 그 다수는 욕심이 만연하여 무질서를 가져올 것이다. 어쩌면 이 또한 흥망성쇠의 굴레에 따라 순회하는 것이니 권불십년이라는 말이 괜히 나온 것은 아닐 것이다.
다만 사람이 하늘 무서운 줄 모르고 날뛰면 당장에는 욕심대로 될 듯하나 그 생명력이 오래가지 못하는 것이고 먹은 만큼 싸야 하는 건 당연한 이치다. 오늘은 말의 신중함과 욕심이 낳은 화의 종점에 대해 함께 공감대를 구해본 날이다. 전국적으로 여름 장마가 시작된 듯하다.
글을 쓰는 경남 진주지법 사천의 법원 한 켠에서 사건번호별로 나열된 사건명과 원, 피고들의 명단을 살펴보며 사람 사는 세상에 욕심이 없다면 법조계 사람들은 뭘로 먹고살까 싶다. 어찌 가든 세상은 굴러간다. 누가 누굴 탓하랴 모든 결과에는 원인이 있는 것이고 놀고 먹여주겠다는 사람이나 그런다고 손든 사람이나 공범이다.
어찌보면 사람처럼 단순한 동물도 드물다. 붉은색을 푸르다고 백번 가르치면 불그스름하다가 푸르스름해지고 천 번을 가르치면 붉은색이 푸르고 푸른게 붉은 색이 된다. 내란이라면 내란이고 우두머리라면 우두머리다. 지금 돌아가는 세상이 그러하다.
덕암 김균식
김균식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