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암 칼럼 쥐죽은 듯 살아야
2026.10.19 15:09:20

살다 보면 이런 일 저런 일 생기겠지만 힘없고 빽 없고 돈 없으면 쥐죽은 듯 조용히 살아야 한다. 요즘 뉴스를 보면 구월동의 묻지마 살인 미수를 비롯해 평택에서는 외국인들의 집단 패싸움으로 밤거리가 공포에 떠는가 하면 하루가 멀다 하고 치안과 관련된 사건 사고들이 헤드 라인을 장식한다.
이런 일은 이미 이전에도 다반사였지만 유독 사건 사고를 언론이 앞머리에 다루다 보니 마치 치안 부재로 비춰지기 쉬운 분위기다. 일단 공포 분위기가 조성된다. 검찰이 사라진 세상에 경찰의 부실을 부각 시키는 여론조성의 목적은 무엇인지부터 짚어보자.
어릴적 망태 할아버지가 잡으러 온다고 거짓말로 겁을 주면 울던 아이도 조용해진다던 시절이 있었다. 인간은 누구나 자신의 신체적 고통에 대해 본능적으로 움츠리는 반사작용을 하게 된다. 직접 피해가 발생하지 않아도 타인이 피해에 대해 미리 겁을 먹고 피하게 되는 것이다.
필자가 경찰서 출입기자 시절 겪었던 에피소드는 책 열권을 펴내고도 남음이 있는데 밤새 파출소에서 해결되지 못한 사건이 본서로 넘어오면 다음 날 아침 당직 사건 일지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파악된다. 단순한 폭행 사건은 물론 자살, 고독사, 화재, 등 온갖 일들이 다 벌어지는게 세상 일이다.
그런데 벌어지는 사건을 보면 가해자와 피해자가 공존한다. 직접 피해를 당한 고소인도 있고 3자로서 불법을 보고 고발하는 사람도 있다. 어쨌거나 민사든, 형사든 법앞에 서면 경찰 조사를 거쳐 검찰로 가고 검사가 기소할지 재수사할지, 혐의없음으로 종결될지가 결정된다.
겪어본 사람은 안다. 이런 과정이 일상에 얼마나 많은 불편을 초래하고 심리적으로 스트레스를 주며 경제적으로 불안감을 느끼는지, 여차하면 변호사를 선임해야 하는데 소액 짜리 변호사를 선임하자니 패소할까 두렵고 전관예우라도 받는 변호사나 로펌을 선임하자니 감당이 안된다.
그렇다면 원고, 피고를 떠나 돈 있는 사림이 유리하다는 건 상식적인 일이다. 이제 검찰이 사라졌으니 경찰이 모든 사건을 맡아 검찰의 역할까지 해야 할 판이다. 이런 사건 사고로부터 독자님이 안전하다는 보장은 어디에도 없다.
막상 휘말리면 주변의 인맥을 찾게되고 그러다 안되면 변호사부터 찾게 되는게 현실이다. 사소한 사건이면 대충 넘어가겠지만 중대한 범죄에 연루되거나 본의 아니게 가해자로 몰리게 되면 그 막막함은 예산을 뛰어넘는다. 사람사는 세상에는 온갖 유혹과 함정과 우발적인 것 같지만 사전에 조작된 일들이 많다.
어찌 험한 세상 살면서 티끌 만한 먼지도 없이 살 수 있으며 경제적으로 어려워 질수록 범죄 발생의 가능성은 높아지니 조심하고 몸 사리는 게 가장 상책이다. 누군가 공짜를 권유하면 거절해야 하고 또 싸고 좋은 걸 준다 하면 그 좋은 건 혼자 다 가지라고 말하고 피해야 한다.
인터넷의 발달이 인간의 상상을 뛰어넘으면서 AI조차 거짓말하는 세상이 됐다. 누굴 믿을까. 그렇다고 눈감고 살 수도 없는 노릇이고 앞서 거론했듯 수그리고 사는 게 상책이다. 갈수록 돈이 모든 걸 해결하는 시대로 변하고 있다.
조선 시대만 하더라도 중대범죄는 신분의 고하를 막론하고 처벌을 받거나 벌금으로 때워야 했다. 적어도 광복 이후 1980년대까지만 해도 돈보다 법이 중시되는 세상이었다. 그러다 암암리에 공천권을 팔고 사는 매관매직이 성행하면서 지방자치단체가 시작되던 시점부터 지방 관료들의 부패가 만연해졌다.
1988년 올림픽을 치르기 위해 서울 길거리에 걸리적거리던 노숙자들이 어디론가(?) 사라지고 한국은 격동기에 접어들었다. 돈과 권력과 기업이 공생하던 시절, 멀쩡하던 기업도 정치에 합류하지 못하면 공중 분해되던 시절이었다.
나열하자면 끝이 없고 반대로 힘도 돈도 없는 서민들은 사소한 잘못에도 법의 잣대는 고무줄이었다. 재는 방법에 따라 형량의 분량이나 공정성도 달라지는 일이 비일비재했다.
훗날 밝혀진 일이지만 판사들이 사건을 팔고 사는 일이 뉴스에 보도됐고 판검사들이 퇴직해서 변호사를 개업하면 수년내 평생 먹고 살 것을 다 챙길 수 있는 전관예우가 당연하던 때가 있었다. 당연히 돈으로 흔드는 재판 과정에 누군가 유리했다면 누군가는 불리할 수 밖에 없었다.
그렇게 벌어서 공천 헌금 주고 금뺏지 라도 달면 하늘 높은 줄 모르고 2선, 3선 하다 잘 하면 장관까지 해 먹는 세상 이었던 것이다. 어째서 1988년 있었던 사건이 약 4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써먹을 수 있는 칼럼의 소재가 될까. 유전무죄 무전유죄, 언제쯤 이런 단어를 적어도 믿지 못하는 날이 올까.
오늘은 38년 전인 1988년 10월 16일 지강헌이 탈주했다가 인질극에서 사망 직전 남긴 말이다. 당시 지강헌은 상습 절도로 체포돼 총 17년의 징역을 선고받았다. 지강헌이 자신의 어머니에게 남긴 말이다.
"낭만적인 바람막이 없이 이 사회에서 목숨을 부지하기에는 너무나 살아갈 곳이 없었다. 어머니 나 있잖아요, 사람이 살아가면서 자기의 뜻대로 살순 없지만 내 마지막 만큼은 내 뜻대로 살겠습니다.“
500만 원 절도를 저지른 자기보다 70억 원 횡령을 한 전두환의 형 전경환이 형기가 더 짧다는 데에 불만을 가지고 탈출한 것이었다. 당시 35세의 지강헌은 경찰의 총 2발을 맞았고, 같은 날 세브란스병원에서 과다출혈로 숨졌다. 사람은 누구나 처음부터 극단적인 상황을 만들지 않는다.
감정이 우발적으로 통제되지 못해서 생기는 일도 있고 아무리 조심해도 운이 나빠 불행을 겪을 수도 있다. 그러다 감당이 안 되면 제2, 제3의 지강헌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결론을 말하자면 사람 사는 세상에 사건 사고는 늘 있던 일인데 갑자기 생긴 것처럼 부풀려서도 안되고 누구든 불의의 사고나 질병, 재해로 부터 자유로울 수는 없다. 다만 언론이 연일 사건 사고를 보도한다고 미리서 부터 겁먹을 일도 아니고 검찰이 없다고 갑자기 치안 부재가 생기는 것도 아니다.
입술이 없으면 이가 시리다는 순망치한도 있지만 이가 없으면 잇몸으로 산다는 말도 있다. 혹여라도 피하지 못할 일이 생기면 즐기는 것도 방법이며 급할수록 당황해서 판단력이 흐려질 수 있다는 것도 전제한다. 나중에 알고 보면 충분히 막을 수 있는 일이 어리석은 처신으로 원치 않는 수업료를 치를 수 있다.
무슨일이 일어나면 아는 사람이 더 무섭고 적은 가까운데 있는 것이다. 괜히 판단력이 흐려져 없는 돈에 무덤을 파지 말고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아무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법은 멀고 주먹은 가깝다. 갈데 안 갈데 다 가보고 하는 말이다.
덕암 김균식
김균식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