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암 칼럼 어용노조 어용야당
2026.02.24 14:12:12

약 35년 전 일이다. 당시 노동자의 권익이 바닥을 치고 있을 무렵 노조결성은 결코 쉽지 않던 시절이었다. 필자가 탄광도시 태백에서 광부들의 열악한 작업환경에 상당한 관심을 갖고 석탄산업합리화 정책에 반대하며 시민단체 활동을 하던 무렵 서울 도심에서도 노동자들의 집회가 끊이지 않았다.
대학가에는 경찰 최루탄이 연일 희뿌연 연기를 내뿜으며 시민들까지 기침을 멈추지 못하는 모습이 언론의 1면을 장식했다. 당시 군사정권을 막을 내리면서 노태우 정권이 시작되었으나 결국 그 나물에 그 밥인 권력이었다.
집회 과정에 자연스레 익히게 된 민중가요, 무노동 무임금, 동지가, 등 수 십 곡의 행진곡형 노랫말과 머리띠를 두르고 평등을 외치던 일이 필자 자신에 마치 정의의 선구자 마냥 착각하며 의기와 투지로 나날을 보내던 날들이었다. 그때 등장한 것이 어용노조였다.
회사 측이 노조설립을 사전에 차단하기 위한 방법으로 가짜 노조를 설립하여 정상노조의 출범을 막는 구조였다.
어쩌다 정상노조가 자리를 잡을 때면 회사를 구한다는 구사대를 고용하여 폭력으로 강제 진압하던 구시대적 산물, 세월이 40년 쯤이나 지난 2030년, 다시 정권을 누가 정권을 잡든 간에 권력을 비호 하기 위한 가짜 야당이나 시민단체가 들어선다면 단순히 회사 하나를 방어하는 게 아니라 국가 전체를 말아먹는 시대가 올 수 있다는 우려를 안 할 수 없다.
지금의 야당이 돌아가는 꼬락서니를 보면 충분히 그러고도 남음이 있다. 지방선거가 끝나고 다시 총선이 돌아오는 2028년, 국민이 어떤 선택을 할런 지는 두고 볼 일이지만 콘크리트 지지층을 기반으로 여당의 독주가 계속된다면, 그래서 제동기능을 잃은 초고속 열차가 국민 안위가 아니라 정권 유지의 목적지로 질주한다면 그땐 어쩔 것인가.
역사를 돌이켜 보건데 독재는 스스로 정화장치를 마련하지 않는 한 부패할 수밖에 없다. 여야를 떠나 지금까지 당선 전과 당선 후의 모습이 달라지는 건 이미 광복 이후 국회의원 특권 폐지가 지켜지지 않은 것만으로 충분히 입증됐다. 당연히 자정 기능을 마련한다는 건 고양이에게 생선의 맛을 포기하란 것보다 더 어려운 일이다.
필자가 우려하는 어용 야당은 겉모양은 야당인데 하는 짓이 여당보다 더 여당의 속내를 갖춘 정치인들이다. 야당의 역할은 여당에 대한 견제장치이자 건전한 정치 발전의 양대산맥으로서 선의의 경쟁까지 만들어낼 수 있는 정치 구도다. 따라서 여야 간의 이견 차이는 발생할 수 밖에 없으며 이견과 대립은 그 폭이 클 수 밖에 없다.
이견은 같은 안건이라도 서로 다른 견해를 통해 다양함을 구할 수 있으나 대립은 각자의 주장만 강조하며 국론을 양분시키고 국민들의 삶을 피폐하게 결과를 초래한다. 대립으로 인한 폐단은 이미 조선 시대 이전부터 늘 존재했다.
서인동인, 남인 북인, 노소갈등과 양반 평민, 상놈이란 계급사회가 그러했고 식민지 시대에도 친일과 반일, 지금은 영, 호남이 지역갈등, 남녀 갈라치기와 고용인과 피고용인으로 찢어 놓음으로서 다수의 표를 얻을 수만 있다면 그 어떤 분열이나 갈등도 조장하는 시대에 도래했다.
지금은 스마트폰으로 지구 반대편 밀림지대 숲속까지 볼 수 있는 시대임에도 여전히 이런 계층 간 갈등은 해소되지 않고 있다. 필작 참으로 염려하는 대목은 이 부분이다.
이견이나 대립 정도가 아니라 어용 야당이 우후죽순처럼 생겨나 진정한 견제세력이 없는 세상, 야당같은 여당이 한둘이 아니라 수십개 창당하여 여당 스스로가 만든 야당이 판을 치게 된다면 국민들의 선택은 어디로 갈까. 지금 돌아가는 판세를 보면 충분히 그러고도 남음이 있다.
파랗던 색깔이 붉은색과 구분되던 지금은 도 아니면 개라도 선택하겠지만 절대 권력을 가진 파란색이 만든 붉그스럼한 색의 야당, 오렌지색 야당, 분홍빛 야당이 생겨난다면 파란색 철옹성은 절대 권력의 위치를 고수할 수 있다. 필자는 권력에 대한 독주를 우려하는 게 아니다.
독재도 잘만 하면 국력을 강화 시키고 국민들의 화합을 유도하여 보다 살기 좋은 나라로 만들 수 있다. 과거 박정희 전대통령 당시 무슨 자유와 인권이 보장되었던가. 그래도 한강의 기적을 낳았고 국민들은 국익 중심의 정책에 애국관이 투철했다. 이제는 달라졌다.
자유와 문명의 발달에 길들여진 국민이다. 과거마냥 하란다고 하는 국민이 아니고 갈라치기에 익숙해진 국민들이다. 미끼로 달래는 것은 한계가 있는 것이고 끝없는 욕심을 채워주지 못하면 인내로 표를 주지 않는다. 그래서 야당의 출범이 두려운 것이다.
여당 독주의 세상에서 얼핏 보면 국민들 편을 들어주는 것 같은 착각을 일으키는 군소 야당들의 출범은 민과 관 사이에 기생하며 예산만 축내는 어용시민단체들과도 같은 존재이기 때문이다.
본질을 망각하고 권력에 기생하며 매년 막대한 예산을 갉아먹고 사는 기생충들이 정작 나서야 할 자리에는 눈치만 보며 숨죽이고 안 나서도 될 자리에는 촛불과 횃불을 켜며 목소리를 높이는 부류들이 지금도 판을 치고 있다.
어용 야당은 그러한 맥락에서 볼 때 권력 보좌의 2중대가 되어 온갖 명분으로 세금 축내며 마치 국민의 의지를 대변하는 양 목소리를 높인다면 그때는 무슨 대책이 있을까. 감히 그런 기형적 성장을 누가 막을 것이며 누가 옳고 그름을 판단할 것이며 누가 앞장설 것인가.
지금도 수 천 개의 단체가 국민 세금을 축내며 기생하고 있는 판에 더하면 더했지 덜할 것이 없다. 어쩌면 2026년 지금의 국민의 힘이 그나마 붉은 색 야당의 대표적인 모습으로 남는 마지막 진짜 야당일지도 모른다. 윤석열 전 대통령의 계엄령이 마지막 발악의 포효로 여 야라는 정치적 구도의 끝 자락 일수도 있다.
두번씩이나 대통령을 배출하고도 지키지 못했던 야당이다. 그리고 스스로 서로가 배신을 밥먹듯한 야당이다. 여당의 독주를 지켜볼뿐만 아니라 뒤로 거드는 야당이다. 역사는 흐른다. 누가 어떤 흔적을 남기느냐가 후손들에게 귀감 내지는 오점을 번복하지 않는 참고사항이 될 수 있다.
대한생활체육회 회장 김균식
김균식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