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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덕암 칼럼 선출직 공직자의 일장일단

  • 덕암 칼럼 가른다고 갈라지니 문제다

  • 잊혀져 가는 한식날

  • 덕암 칼럼 제주 4.3항쟁 역사는 흐른다.

  • 덕암 칼럼 남의 밥상에 수저놓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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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덕암 칼럼 선출직 공직자의 일장일단
    덕암 칼럼 선출직 공직자의 일장일단

    공무원을 하려면 정해진 시험과 면접에 합격해야 한다. 간혹 특별한 자격증, 경력 등으로 기술직이나 특수직에 근무할 수도 있지만 선거를 통해 공무원이 되는 경우를 선출직 공무원이라한다. 시험은 아니지만 선거를 통해 국민들의 대표로 뽑혔으니 인정해야 하고 연임은 경력이 붙지만 초선은 가장 늦게 입사한 사람이 가장 높은 자리에 앉아 인사권, 결재권을 갖고 4년간 사실상 고을 사또나 수령의 위치에서 살림을 살아야 한다. 기초의원, 광역의원도 마찬가지다. 몇 십 년간 해당 지자체의 공직사회에서 청춘을 다 보낸 전문가들이 어느 날 갑자기 당선된 시장, 군수를 모시자니 환경에 적응하려는 준비가 급선무다. 당선자의 나이, 고향, 종교, 취미는 물론이고 측근들은 누구인지 핵심적 책사는 누구인지부터 파악해야 한다. 물론 단체장을 잘 살피고 보필해야 지자체 운영이 안정적인 것은 맞지만 내심 잘 보여야 진급도 하고 이러저러한 시책사업이 원하는 대로 갈 것 아닌가. 그렇다면 당선자 입장에서 볼 때 가장 먼저 무엇부터 할까. 일단 전임시장의 핵심세력부터 척결한다. 가령 체육회장이라든가 기타 관변단체장, 산하 기관장으로 도시공사 사장, 도시개발 사장, 문화회관이나 청소년수련관장 등 갈아치워야 할 조직의 수장들이 허다하다. 그냥 두었다가는 전임 시장이 낙선할 것을 대비해 심어두었던 사람들의 임기가 아직 한참이나 남았기 때문이며 이들이 버티고 있는 한 단체장의 말발이 먹히지도 않을뿐더러 한 자리씩 꿰어 차고 있는 사람들이 조직에 끼치는 영향 또한 만만찮기 때문이다. 이렇듯 선출직 공무원의 비 전문성은 평소 오랜 기간 근무하며 조직내 고참으로 버티고 있는 국장급이나 기타 요직들의 노하우를 따라갈 수 없다. 선출은 유권자들이 했지만 임기는 당선자가 채운다. 처음에는 허니문기간이 있어 서로 줄대기 바쁘고 인수위가 꾸려지는 순간부터 한달동안 지역의 꽃가계는 대박이 터진다. 시장실을 기점으로 복도까지 길게 진열되니 화분은 수백개를 넘고 요직을 맡은 인사들의 사무실에도 마찬가지다. 딱히 어느 특정 도시만의 일이 아니다. 이쯤하고 입법기관인 의회의 당선자는 더하다. 다수당이 누구냐에 따라 의장선거도 치러야 하고 전반기 의장이 탄생하면 어느날 나타난 평범했던 사람이 끗발이 하늘을 찌른다. 멀쩡하던 사람, 늘 겸손하고 인성이 잔잔하던 사람도 입성 후 6개월만 지나면 전혀다른 사람이 된다. 일단 말투나 음색이나 높이가 저음으로 변한다. 차차 사라진 웃음은 4년이나 지나야 볼 수 있고 여의도 국회에서 본 것은 있어서 시청이나 군청 공무원들 닦달하는 자세는 마치 전쟁을 마친 개선 장군보다 더하다. 호통에 손가락질은 보통이고 심지어 멀쩡한 실무 공무원들을 동네 후배 대하듯 조져댄다. 그러다 때가 되면 의회에 파견되어 근무하던 전문위원, 홍보실 직원이나 기자, 시민단에 대표들을 데리고 해외로 공무를 떠난다. 지금이야 다소 수그러졌지만 과거에는 그래야 모두 코를 꿰어 조용하기 때문이다. 외국에 나가서 태극기(?)를 꽂는 긍지와 자부심은 무슨 개 풀 뜯어먹는 소리일까. 적어도 10년 전까지만 해도 그랬다. 처음 지방의회가 출범할 때 봉사직이었다. 그러다 급여가 생기고 권한이 늘어나고 점차 관련 조례를 통해 공직사회에 개입할 수 있는 폭이 넒어지자 지금처럼 치열한 경쟁이 생긴 것이다. 다행히 4년이란 임기가 정해졌으니 망정이니 그마저 없었으면 왕 노릇을 하고도 남음이 있다. 4년 임기에 선택만 받으면 계속 할 수 있지만 대통령은 5년 단임제로 한번 뿐이다. 민주주의 국가에서 이런 제도는 장점도 있지만 단점도 있다. 사람의 욕심이란 처음부터 생기는 게 아니라 살다 보면 자신도 모르게 생기는 것이다. 여기서 왕과 대통령의 차이점도 함께 엿볼 수 있다. 왕은 자식에게 까지 대를 이어 물려주니 왕손이 끊길까봐 후궁을 두고서라도 임금의 씨를 보존하는 것이 당연한 것 이었다. 군주체제는 정책의 일관성이 있다는 장점도 있지만 그러다 보니 시도 때도 없이 제 명을 다하지 못하고 왕권 찬탈전이 끊이지 않는 것이었고 역모는 3대를 멸하는 형벌에 처해졌다. 왕은 왕답게 근엄하고 백성을 위하는 덕정을 펼쳐야 한다. 그래서 고관대작들이 충성으로 주군을 모시고 지방마다 고을 수령의 부패를 막기 위해 암행어사를 두기도 했다. 지금이야 감사원이 그 역할을 대신 하지만 감사원에 대한 국민들의 신뢰는 바닥을 치고 있다. 21세기 민주주의가 낳은 단임제 대통령, 그마져도 한국은 역대 대통령치고 임기를 무사히 마치거나 퇴임 후에도 안전하게 노후를 보내는 대통령이 드물다. 국민이 뽑아놓은 대통령도 근거없는 낭설로 광풍을 만들어 일단 파면이나 탄핵을 몰아붙이고 감옥에 수년간 처 박았다가 출소해도 딱히 죄를 물을 만한 내용은 없었다. 언제부턴가 대한민국의 대통령은 선출보다 다시 끄집어 내리는게 당연한 세상이 됐다. 신하들은 평소 임금한테 잘 보이려고 온갖 감언이설로 간신 짓을 하다가 수세에 몰릴 만하면 죄다 안면 몰수해서 저 살기 바쁘다. 걸핏하면 국민을 입에 달고 살며 국민에게 주권이 있다고 하지만 정작 국민은 세금내기 벅차고 과거 조선시대 보다 더 나을 일이 없다. 왕이 왕 답지 못하고 지방고을 수령의 일까지 죄다 간섭하는가 하면 외국과의 교역에도 불필요한 말로 국익을 훼손하는 일은 없어야 한다. 지금 있다 없다고 단정지을 시기가 아니기에 말하자면 그렇다는 것이다. 경찰서 형사과에서 해야할 일을 서장도 청장도 법무부장관도 아닌 대통령이 나선다면 그것 또한 할 일이 아니며 시청의 단속반이 해야 할 일을 도청이나 행안부까지 무시하고 나서는 것도 중간의 모든 관계자를 무시하는 처사다. 고양이는 아무리 울어도 호랑이 소리가 안 난다. 부정선거도 선거고 이 또한 국민들의 선택이라면 선택이디. 오늘 선거는 하나 뿐인 국민의 권리다 권리위에 잠자는 자는 권리를 논할 권리조차 없다. 덕암 김균식

  • 	덕암 칼럼 가른다고 갈라지니 문제다
    덕암 칼럼 가른다고 갈라지니 문제다

    뭉치면 살고 흩어지면 죽는다. 대한제국이 일본식민지로부터 해방된 이후 좌익과 우익으로 국론이 분열되자 이승만 대통령이 국민이 단결을 위해 호소한 말이다. 그래서인가 한국은 혈연,지연, 학연 등 온갖 명분으로 뭉치기 시작했고 그러한 단결을 적절히 활용한 분야가 정치였다. 그랬던 뭉치기가 다시 갈라치기로 변한 것은 불과 얼마 전이다. 초등학교 때부터 청군 백군으로 나뉘어 편을 가르고, 돈과 권력을 가진 자와 그렇지 못한 자, 남과 여, 청년과 노인, 고용주와 고용인, 표가 많은 쪽의 손을 들어주는 정책이 난무하기 시작했고 그렇게 시작된 갈라치기는 국민들 끼리 서로 고발하고 미워하는 일러바치기 문화가 자리잡게 됐다. 가벼운 경범죄라도 단속 공무원보다는 국민들 끼리 파파라치로 신고해서 포상금 타 먹는게 직업이 되는 세상으로 변했다. 한번 당한 범법자는 보복심리에 의해 안 해도 될 신고를 즐기기(?) 시작했거 당한 사람은 또 다른 사람을 고발하는 고발 전성시대를 맞이했다. 심지어는 대통령 마저 대 놓고 파파라치를 직업으로 하는 것이 어떻겠냐는 말을 하고 있으니 나라 꼴이 어디로 갈 것이며 국민화합은 어디서 찾을 것인가 일국의 지도자 입에서 이런 말이 나오니 경악을 금치 못할 일이다. 조선의 마지막 총독 아베 노부유키의 예언의 일부를 인용하자면 대일본제국은 패전하였지만 조선은 승리한 것이 아니라며 장담하건대, 조선인들이 다시 제정신을 차리고 찬란하고 위대했던 옛 조선의 영광을 되찾으려면 100여년이라는 세월이 훨씬 걸릴 것이라고 예언을 남겼다. 그리고 총과 대포보다 더 무서운 식민교육을 심어 서로를 이간질하며 노예적인 삶을 살 것이라며 옛 조선은 위대하고 찬란했지만 현재의 조선은 결국은 식민교육의 노예들의 나라로 전락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 얼마나 섬칫한 예언이고 현재 미일간의 친목 분위기를 보면 한국만 왕따 당한 것이 이를 증명하고 있다. 현 정부가 친중 정책을 펼치고 미국과 함께 동맹국으로서 전쟁을 벌이고 있는 이스라엘의 염장을 지르고 반대로 이란에 돈을 퍼주는 현상이 글하다. 안 해도 될 말로 유태인 들의 아킬레스건을 건드리고 안해도 될 이란 원조에 한 몫한다면 그 어떤 명분으로도 이번 전쟁이 끝난 다음 한국의 미래를 참으로 암담하기 그지없다. 뿐인가 외교가 이러한데 국내에서는 삼성노조의 막대한 성과금 요구에 이어 현대 자동차도 보란 듯이 거들고 있다. 이대로라면 국가 경제의 리더 역할을 했던 대 기업의 몰락또한 불보듯ㄱ 자명한 사실이다. 게다가 이념전쟁, 체제전쟁에 이제 진보, 보수, 좌파 우파는 기본이고 조선 시대부터 내려오던 노론 소론, 남인 북인의 유산이 부활하는 현상을 보이고 있다. 물려받을 게 없어서 대립과 충돌이 지금까지 성행하고 있는 것일까. 이래서는 안된다. 최근 대한민국은 파란색과 빨간색으로 나뉘었다. 선거 때마다 색깔 바람이 부는 것을 마치 그 바람을 타지 않으면 사표가 되는 것으로 착각하여 군소정당이나 무소속의 당선은 불가능에 가깝다. 그러니 공천이 절반의 당선이고 나머지는 바람만 타면 후보자의 자질이나 리더십, 정치적 판단능력은 뒷전이다. 파란 바람, 빨간 바람, 그러니 후보들조차 민심이나 지역 언론은 아랑곳하지 않고 일단은 정당 공천에 공을 들이는 것이며 밀려난 후보들은 정작 자신의 부족함에 대한 인정보다는 거품을 물고 불만을 토하는 것이다. 한국 정치의 이런 분위기에 누가 감히 그 어떤 인재가 진출할 수 있을 것이며 설령 당선된들 임기를 무사히 마칠 수 있을까. 필자가 최근 지역 선관위에 대담 요청서를 보내고 선거법에 의거 후보들과의 대담을 진행 중이다. 어떤 이는 낙선되면 후보 한 사람의 불행이지만 당선되면 지역구 주민들의 불행이라는 암시를 받고 또 어떤 이는 꼭 당선되어야 할 후보지만 힘에 밀리고 돈에 밀리고 인맥에 밀려 낙선되는 경우를 많이도 봐왔다. 국민들을 편가르고 한표라도 많은 쪽의 여론을 들어주니 사람의 욕심이란게 하나 둘씩 정치판을 이용하여 자신의 이득과 편익과 공짜만 요구하게 되는 것이다. 결국 모든 정치판의 부패나 권력의 빗나간 화살은 모두 유권자의 책임이고 그 대가 또한 유권자의 몫이다. 당초 조선은 삼국 통일 이후 한반도를 지켜온 배달의 한민족이었다. 그러다 남과 북으로 갈라진 것이고 다시 남에서도 영남과 호남으로 갈라지고 거기에 온갖 명분으로 갈라지고 흩어지니 결국 정치인들만 물 만난 고기인 격이다. 이제는 하다 하다 대한민국의 중심지역인 대전을 정점으로 하여 부산은 5시 방향, 광주는 7시 방향, 등 시계 바늘처럼 정해놓고 편 가르기를 해댄다. 가르가 가르다 별 해괴한 방법과 표현을 동원한다. 영·호남의 갈등과 지역감정은 지리적으로나 역사적으로나 말투나 풍습 그리고 정서와는 많이 다르기 때문에 조금만 파고들어도 민감해질 수 있다. 경상도, 우리가 남이가, 등 지역감정을 한껏 조장하여 표를 얻는 것도 문제지만 막상 투표함을 열어보면 호남지역은 죄다 파란색이다. 겉으로는 지역발전이 되니 안되니 성토를 해도 결과는 광복 이후 달라진 게 없다. 대안을 제시한다. 배를 떠받치고 있는게 물이고 물이 성나면 배를 침몰 시킬수도 있고 순항을 보장하기도 한다고 했다. 온갖 미사여구와 달콤한 말로 얼마나 유권자들을 유린했던 긴 세월이 있었던가. 한번 속으면 정치인의 거짓말이고 두 번 속으면 그 나물에 그 밥이요 세 번 속으면 속은 사람이 옳지 못한 경우다. 도둑질도 망보고 공범과 눈감은 경찰과 잠든 주인이 있었으니 가능한 것이지 어느 것 한 가지도 갖춰지지 않으면 불가능한 것이다. 이제 40일 남았다. 유권자들이 판단하는 데는 1시간도 걸리지 않는다. 인물 중심, 경력을 근거로 살아온 과거를 평가하고 공약에 대한 가능성과 현실성도 검토해보는 시간이 그리 오래 걸리지는 않는다. 편 가르기를 하는 사람보다 가른다고 갈라지는 사람이 문제다. 깍지를 꼭 끼고 있으면 두 손은 갈라지지 않는 법이다.

  • 	덕암 칼럼 제주 4.3항쟁 역사는 흐른다.
    덕암 칼럼 제주 4.3항쟁 역사는 흐른다.

    제주 4.3 항쟁이 발생한 지 72년이 지났다. 1948년부터 1954년까지 광복이후 6.25전쟁까지 이어진 과정에서 생긴 일인데 그동안 뭐하다가 지금와서 보상이니 기념사업회니 난리 부르스를 추는 것일까. 원인을 살펴보면 이념대립이나 갈등이 빚어온 사건인데 죄 없는 양민들이 대거 학살당했다. 좌익사상이 불러온 참극이지만 일본군이 남기고 간 무기와 군복은 물론 상당한 군사 물자들이 제주의 운명을 달리하는데 사용됐다. 역사의 기록을 살펴보면 제주 시민들 중에서도 그런 무기들이 어디에 얼마나 보관되어있는지를 알기에 이를 알려줌으로써 스스로 화를 자초한 것이나 진배없었다. 서로가 의심하고 밀고하는 분위기에 죽창가를 부르며 살벌한 피바람과 밤이면 횃불을 든 무리들로 하여금 재판도 없이 처형하는 일이 허다했다. 그렇게 목숨을 잃은 사람들만 수 만명, 지금까지 역사에 남을 만한 사건들은 숱한 기록이 있지만 제주4.3 항쟁처럼 쉬쉬하며 묻어온 사건도 드물다. 간혹 다큐멘터리나 책자로도 발행되었지만 고인이 된 후손들의 사회적 지위와 역량이 약한 탓인지 여전히 재조명되는 일이 제자리를 돌고 있다. 물론 거창 양민학살사건이나 대부도의 선감 학원사건, 부산의 형제복지원 사건 등 힘없고 가난한 자들의 아픔이 묻혀진 사건도 많았다. 하지만 제주 4.3 사건은 원인과 진행 과정에서 적잖은 의구심이 지금도 제대로 파헤쳐지고 있지 않다. 아름다운 제주의 풍경속에 이런 아픔이 묻혀 있는 줄은 대다수 국민들이 모른다. 몰라도 되지만 알아야 하는 것은 억울하게 불귀의 객이 된 양민들 입장에서 볼 때 힘 없는 사람은 인원수나 죽음의 형태에 따라 대충 묻어지는 반면 광주민주화운동에 대한 국가의 각별한 지원은 천문학적 규모로 이뤄지고 있다. 물론 과거에 대한 청산이 진실되지 않으면 미래에 같은 일이 일어나도 권력의 편향적 판단에 따라 묻힐 수도 과장될 수도 있기에 있는 그대로 확인해서 정리하는 것이 역사여야 한다. 특히 같은 사고도 세월호와 무안공항 제주항공의 사건 처리를 보면 달라도 너무 다르다. 선체 인양부터 해양체험관은 물론 전국적으로 천문학적 예산이 투입되고도 유족들에 대한 보상이나 각종 지원책은 나열하기조차 어려울 만큼 방대했다. 세월호가 그런 과정을 거친 데는 박근혜 전 대통령에게 7시간 의문 제기부터 있지도 않은 테블릿 pc등 조장된 여론도 한 몫 했지만 문재인 전 대통령이 방명록에 작성한 “얘들아 고맙다”라는 기록은 지금도 무슨 뜻인지 의아심을 남기고 있다. 어쨌거나 최근 방송에 거론된 무안공항 제주항공의 잔재물이 1년이나 지난 시점 발견되었다는 점은 어처구니를 넘어 얼마나 졸속으로 사고수습이 진행되었는지를 여실히 보여주는 일 예라 할 수 있겠다. 어찌 희생자의 뼈가 사고현장에서 불과 얼마 되지도 않는 지점에서 발견될 수 있을까. 철새도래지라며 전문가들이 극구 반대했음에도, 광주에서 이격 거리가 얼마 되지 않아 경제성이 없다는 반대 목소리가 있었음에도 굳이 지역 정치인들의 욕심이 화를 부른 것이었다. 공항 개항식에는 너도나도 축하 테이프를 절단하며 얼굴을 나타냈지만 정작 사고가 나자 누구 하나 책임지겠다는 인물이 없었다. 2022년까지 한국공항공사 사장을 역임하던 손창완 사장이 극단적인 선택으로 종지부를 찍은 이 사건의 진실은 제주4.3 항쟁처럼 수 십 년이 지나야 제대로 밝혀질까. 파헤쳐 보면 한도 끝도 없다. 언제까지 제주 4.3 항쟁이 유야무야 덮어지며 시간만 끌까. 국회에서 진작에 개정법안도 만들고 진상규명위원회가 구성되어 누가 역사의 죄인인지, 피해자의 내역에 대해서도 있는 그대로 밝혀져야 한다. 아직도 늦지 않았다. 이미 고인이 된 사람도 있지만 생존자의 증언이라도 확보하려면 더 이상 시간을 끌지 말아야 한다. 반면 이태원 참사도 그러하다. 한 번씩 태풍이 불 때마다 별 상관도 없는 사람까지 죄다 끌어들이는가 하면 정작 참사 발생의 주 원인자를 슬그머니 빠지는 경우도 볼 수 있다. 힘이 있다고 빠지고 상황을 수습하기 위해 사소한 관련성도 확대하여 트집을 잡으면 사건 진상규명의 원인만 흐려진다. 돌이켜 보건데 조선시대 이전에도 억울한 죽음은 많았다. 전쟁터에서도 이념대립으로 인한 내전으로도, 자연재해나 질병으로도 많은 사람들이 떼 죽음을 당한 적은 숱하게 많았다. 특히 정권이 바뀔 때마다 반역이나 역모죄로 몰려 형장의 이슬로 사라진 사람들이 한둘이던가. 얼마 전 국회에서 재론된 코로나19 방역의 오염백신 사태만 해도 그러하고 부작용으로 사망한 사람들은 전문성, 당시 사회적 분위기에 밀려 지금도 망자의 한을 풀어주지 못하고 있다. 이제 결론을 짓자면 제주 4.3 항쟁은 도서, 영화, 다큐, 진상조사, 등 다양한 방법으로 국민들에게 알려져야 하고 그 원인에 대한 논쟁도 마무리 되어야 한다. 그리고 같은 아픔을 번복하지 않기 위해 원칙도 정해져야 하며 권력 이동에 따라 진실이 달라지는 일이 없도록 현대판 사초의 역할을 담당할 부서를 마련해야 한다. 임금의 어명에도 굴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작성하는 사초, 실록은 그랬기에 가치가 있는 것이지 권력자의 입맛대로 소설 쓰듯 찬양 일색으로 쓰여 진다면 그건 홍보물에 불과한 것이지 역사라고 할 수 없다. 아직도 대한민국에는 일부 양심 있는 학자들이나 언론인들이 객관적 견해로 기록을 남기는게 전부다. 그래서 모든 정기 간행물은 국립 도서관에 납본을 하는 것이고 지역뉴스까지 보관되어 훗날 참고자료로 사용하게 되는 것이다. 현 정부가 어떤 과정을 거쳐 집권하게 되었는지, 전 정부가 어떤 과오로 영어의 몸이 되고 한순간 계엄령으로 몰락했는지가 진실되고 기록으로 남겨져야 한다. 그러한 측면에서 필자는 매일 글을 쓰고 언젠가 시대가 변하고 후손들이 참고할 수 있는 자료가 되도록 있는 그대로 남기는 것이다. 직필은 사람의 박해를 받고 곡필은 하늘의 천벌을 받는다 했던가. 권력적 봉쇄형 소송으로 입을 막는다고 소리는 멈출 수 있으나 글까지 멈추게 할 수는 없다는 것으로 오늘의 글을 마무리한다.

  • 덕암 칼럼 남의 밥상에 수저놓기
    덕암 칼럼 남의 밥상에 수저놓기

    2013년 6월, 데뷔한 7인조 그룹, 당시 10대 들이었던 멤버들은 살면서 겪는 힘든일에 대해 편견이나 억압을 막아내겠다는 뜻을 담아 총알을 막는 “방탄”이라는 이름을 붙였다고 한다. 그렇게 태동한 방탄 소년단 일명“BTS”는 MZ세대들의 생각과 고민, 삶과 사랑,꿈과 역경을 주제로 노래를 통해 많은 감동을 선사했다. 이들이 한국에 기여한 분야는 여러 가지다. 엄청난 조회수는 물론이고 노래 가사에 담긴 한글이 전 세계 한글 전파에 상당한 기여를했다, 한류 문화를 알리는 선봉적 역할을 했고 7명이 멤버들이 병역까지 모두 마친 후 화려한 복귀를 선언했다. 다시 돌아온 방탄 소년단은 세계최대 음원 플랫폼인 스포티 파이에서 1위부터 14위까지 죄다 휩쓰는 기적을 일으켰다.특히 이번에 발표한 5집“아리랑”은 우리 민족의 오랜 한과 혼, 자긍심까지 노래로 일깨웠다는 평가를 받았다. 뿐인가 넷플릭스 국가인 미국을 비롯해 총 77개국에서 정상을 기록했다. 그렇게 대단한 그룹은 그룹 본연의 색깔대로 그 룰을 유지해야 하는데 온 국민들이 냉소적 견해로 바라보는 정부, 정권, 정치가 개입하면서 분위기는 전혀 딴판으로 흘러갔다. 비단 음악뿐만 아니라 뭐좀 뜬다 싶으면 슬쩍 섞어넣어 남이 애써 차려놓은 밥상에 수저를 그냥 얹어놓으려고 인기에 편승하려는 심성이 문제다. 이번 광화문 공연이 그랬다. 온갖 오두방정은 정부가 앞장서서 언론플레이까지 벌여놓고 막상 흥행 실패나 다름없는 결과에 봉착하자 슬쩍 뒤로 빠지며 기획사로 책임을 전가하는 정부 측의 얍삽하고 속내가 다 드러나 보이는 입장표명이 그러하다. 빗나간 예측으로 여론의 악화가 심각함에도 이를 인정하기는 커녕 오히려 리더 RM과 소속사 하이브가 감사와 함께 사과의 뜻을 표명했다. 정작 어설프게 공권력 동원하며 인기에 무임승차하려던 정부 관계자는 되려 지적하듯 과를 떠 넘기고 말았다. 사실 4년 만에 완전체로 복귀한 방탄 소년단이 굳이 전 세계가 생중계하는데 광화문으로 장소를 선택했을까. 누가 정확하지도 않은 예측으로 판을 키웠던가. 그리고 누가 생색을 내고 만약 공연이 예상대로 26만명이 왔다면 누가 반사이익을 얻을까. 공연의 주인공인 방탄 소년단일까 아니면 막대한 예산을 투입해 아무 사고 없이 잘 끝냈다며 온갖 미사여구를 다 동원해 인근 옥상에 진두지휘하던 국무총리가 생색을 냈을까. 이미 여론이나 유튜버들의 발빠른 움직임으로 방탄소년단의 공연에 대한 준비가 계엄령 수준으로 엄중했다며 방탄 게엄령이라는 비아냥까지 거론되고 있다. 같은 상황을 놓고 언론보도의 표현 또한 두 갈래로 갈라졌다. 한쪽에서는 막대한 예산, 공권력 투입, 시민불편, 지역 경제 흥행에 실패 등으로 표현하는가 하면 주최 측 10만, 경찰추산 4만, 실제 관객수 2만 등 관객숫자까지 천차만별로 분석이 달랐다. 악재는 이미 다 나왔다. 대전의 화재사건, 다음날 “화이어“를 외치는 노래 가사가 이어지자 홍콩 아파트 화재 사건 이후 개사했던 여지를 거론하며 주최 측의 배려에 대한 비난이 빗발쳤다. 유족들 입장에서는 땅을 칠 노릇이다. 공연장 주변의 상권들이 기대했던 것과는 전혀 딴판으로 끝나 재고가 불가피했던 점이나 과도한 통제로 빚어졌던 일반 국민들의 분노는 아예 거론조차 되지 않았다. 경찰 동원 18,000명에 대한 인건비만도 20억 원을 넘었다는 지적이나 국민들의 의견과 사생활은 아예 참고조차 되지 않았던 일방적 통제는 사실상 계엄령이 발동될 정도가 되야 시행될 수준이었다는 비난도 한 몫했다. 공연 1시간을 위해 33시간이 넘는 주변 지역 통제는 관련 인프라 단절로 인해 겪어야 하는 온갖 불편함에 대해 일언반구도 잘못했다는 관계자가 없다. 잘되면 정치인이 생색내고 잘못되면 기획사가 뒤집어 쓰는 꼴이다. 비단 문화예술 뿐만 아니라 스포츠도 손흥민 선수를 데려다 인기에 편승하려는 시도가 그랬고 뭐좀 성과가 있거나 인기가 있다 싶으면 평소 아무런 기여도 없고 관심도 없었던 작자들이 죄다 무임승차를 시도한다. 특히 국회 청문회에서도 뉴진스 스티커를 노트북에 붙여놓고 방송국 카메라 앞에 찍히려는 시도는 소름이 돋을 정도로 민망한 장면이다. 가장 존경받아야 할 정치인들이 가장 신랄하게 비판받고 남들이 온갖 노력 끝에 성공하면 그 판에다 슬쩍 얼굴을 들이밀어 자신의 인기를 더하려는 치졸하고 민망한 욕심, 지금까지 그랬다면 앞으로는 그러지 말아야 한다. 국민들이 바보도 아니고 그렇게 들러리 선 주인공들은 생각이 없을까. 필자는 모든 글에서 지적에 대한 대안도 제시한다. 이번 일을 반면교사 삼아 같은 일을 번복하지 않으면 될 일이다. 특히 정치인들은 정치만 제대로 하면 되는 것이고 어떤 분야든 모든 분야의 성공한 주인공들은 오란다고 왔다가 실패하면 책임 전가나 받는 굴욕을 겪지 말아야 한다. 오래 전 일이다. 필자가 해마다 국경일 행사를 치르던 시절이 있었다. 수천명의 관중들이 삼일절 추운 날씨에도 몇 시간씩 자리를 지켜주었고 광복절 그 더운 날씨에도 자리를 지켰다 다만 정치인들만 행사 시작 시점에 마이크를 잡고 자신의 치적과 기념일에 대한 의미를 뒤섞어 자신을 홍보하고는 축사했답시고 이석해 버렸다. 한 두 번도 아니고 이런 행태는 어디가나 당연하듯 벌어진다. 물론 남은 관객들은 멀거니 바보가 된 기분이고 모처럼 온갖 준비로 겨우 마련한 국경일 축하생사는 몇 시간 씩이나 다양한 프로그램으로 진행됐다. 정작 끝까지 남아서 박수를 치고 무대를 빛내준 사람들은 평범한 시민들이었다. 이번 광화문 공연은 전 세계가 인정한 방탄 소년단을 한국 정부가 잔뜩 뻥 튀기 했다가 제대로 바람 빠진 풍선의 형국으로 남은 참사다. 인기를 얻은 주인공을 옆에 세워 생색을 내는 일이 한번은 실수고 두 번은 불려온 주인공도 공범이며 세 번은 불려온 그 주인공이 주범이 되어 온갖 욕을 다 먹는 것으로 결론 난다. 앞으로는 이런 일이 없었으면 한다. 그냥 하던 정치나 제대로 하는 게 옳은 것이고 공연은 기획사가 알아서 장소선정부터 전문성을 갖춘 사람들이 하면 되는 것이다.

  • 	덕암 칼럼 오늘부터 노란 봉투법 전격 시행
    덕암 칼럼 오늘부터 노란 봉투법 전격 시행

    2025년 8월 24일 서울 여의도 국회 본청 앞 계단에서 열린 노조법 2·3조 개정안 입법이 통과 된 이후 7개월이 지난 3월 10일 노란봉투법으로 불리는 개정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이 시행된다. 이번 법 개정으로 하청 노동조합이 원청 기업을 상대로 직접 교섭을 요구할 수 있게 되고 합법적인 쟁의행위에 대한 과도한 손해배상 청구도 제한된다. 오늘부터 민주노총은 금속·공공운수·서비스·건설노조 등 산별 조직에 속한 사업장을 중심으로 원청 교섭을 요구하고 이에 응하지 않으면 7월 15일 총파업을 하겠다는 방침이다. 민주노총은 법 시행 이전에 금속노조 26개 사업장, 공공운수노조 59개 사업장에서 원청 기업에 이미 교섭 요구를 했고 한국노총은 하청 노동자 실태점검과 함께 원청 교섭에 나서는 하청 노조 지원책을 마련하기로 했다. 현재까지 경영계의 전언에 따르면 일부 노조는 교섭 자격이 인정되지 않아도 교섭을 요구하겠다고 공언하는 등 노사 간 분쟁이 우려된다는 점과 법시행 전부터 하청 노조가 원청이 교섭에 나올 것을 요구하며 사업장 점거 농성을 하는 등 불법적 실력행사가 벌어지고 있다고 주장했다. 현재 국내 비정규직 노동자 규모는 약 856만8,000명으로 전체 임금 노동자의 38.2%이며 평균 월급은 약 303만7,000원으로 정규직 임금의 77.9% 수준이다. 어디 그 뿐인가 이런 분위기가 사회 전 분야로 확산 된다면 그땐 어쩔 것인가 이제 원청을 상대로 교섭 요구를 시작하고 교섭을 회피하는 사업장에 대해서는 지속적으로 압박 투쟁을 벌일 것이라는 소식은 안 그래도 이란 미국 전쟁으로 어려운 국내 경제에 악재가 겹치는 형국이다. 정부는 개정법과 관련한 교섭절차 가이드라인 마련 등 현장 혼란을 최소화하기 위한 준비를 마쳤지만 노조는 사용자 범위를 확대해 진짜 사장과의 교섭이 가능하도록 해달라고 요구해 온 바 있다. 따라서 원청인 대기업이 하청 업체 근로조건에 개입할 수 있는 상황이라면 해당 업체 노조가 원청 대기업을 상대로 교섭을 요구할 수 있게 됐다. A사의 하청업체 소속 B노조가 원청인 A사에 교섭을 요구하면 A사는 7일 이내에 교섭 요구 사실을 공고해야 한다. 문제는 어디까지가 사용자의 범위를 현장에서 적용할 구체적인 기준이 애매하다는 점이다. 하청 노조가 산업안전 등을 명분으로 일단 교섭권을 확보한 뒤 다른 안건을 끼워넣기식으로 요구할 경우 원청이 이를 거부할 명확한 법적 방어막이 부족하다. 이러다 회사가 망한다면 근로자는 물론 기업 보호도 안 된다. 다시 말해 원청 사업자가 하청 소속 근로자의 근로시간이나 휴식시간, 특정 공정에 필요한 인력 수 등 근로조건의 결정권을 구조적으로 제약할 수 있다면 사용자로 인정될 가능성이 높다. 가령 공장 구내식당에서 조리·배식업무를 맡고 있는 사내 하청 업체에 식사 시간에 맞춰 조리·배식업무를 해달라고 요구한다거나 물품 납기 일정에 맞춰서 업무를 해달라고 요청하는 경우도 죄다 사용자 영역에 포함된다. 따라서 지금까지는 노조가 파업을 포함한 쟁의행위를 하려면 임금·근로시간·복지·해고 기타 대우 등 근로조건의 결정에 관한 것이어야 하지만 오늘부터 근로자의 지위, 근로조건에 영향을 미치는 사업 경영상의 결정, 사용자의 명백한 단체협약 위반이 있을 때도 합법적인 파업이 가능해진다. 뿐만 아니라 해외이전으로 국내 생산 물량이 줄어 희망 퇴직을 실시하고 정리해고를 검토한다는 공지가 나온다면 노조는 고용보장, 전환배치 기준 등을 두고 사측에 단체교섭을 요구할 수 있다. 결국 경영에도 숟가락을 놓을 수 있게 된다. 고용에 대한 여지도 노사간의 이견이 크다. 공사 기간이나 과정은 한정되어 있기에 인력이 필요하지만 공사가 끝난 다음에는 어쩔 것인가 그런데 일시적으로 필요한 인력들을 상시로 고용하려면 그 뒷감당은 누구 몫일까. 인건비 인상에 대한 여지도 불분명하다. 대형건설업체가 하도급을 주고 하도급의 하도급이 돈이 적다며 원청을 찾아가 인상안을 확보하면 그 차액은 누가 부담해야 할까. 원청이 인상액을 주면 중간에 하도급이 있으나 마나 한 거고 원청이 주지 않으면 하도급이 부담해야 할 판이다. 이쯤되면 하도급이란 단어조차 의미가 없다. 단종 건설부터 종합건설에 종사 해 본 필자의 경험상 있을 수도 없는 일이고 일면 노가다 현장의 생리에 대해 천지도 모르는 행정가들이 짜놓은 개판 오분 전 이판사판이다. 표만 얻을 수 있다면 무슨 짓이든 벌일 수 있는 정치인들이나 기업이 망하면 일자리가 없어진다는 다음 수순을 생각하지 않는 이기적 노동계의 헤게모니가 벌인 자업자득이다. 이런 식이라면 어떤 기업이 인력 고용에 대한 문을 열 것인가 공정의 자동화나 인공지능도입에 속도를 내 하도급 계약이 줄어든다면 그 피해는 고스란히 노동자의 몫이다. 당초 노란 봉투법은 쌍용차 사태 때 노란 봉투에 돈을 넣어 회사를 살리기 위해 진행했던 것인데 잘못 인용이 되면서 빗나간 화살이 됐다. 인간은 어떤 일이든 자기중심적 판단과 견해로 사물을 보게 된다. 노동은 대가를 전제로 하는 것인데 대가의 기준이 완화되어 적게 일하고 많은 돈을 받게 된다면 그 피해는 또 다른 누군가에게 전가된다. 그러다 해결이 안 나면 포기하게 되는 것이고 모든 분야에서 같은 피해로 도미노처럼 확산 된다면 그 사회, 망하는 길밖에 남지 않는다. 사업이란 원청이든 하도급이든 품떼기 인부든 간에 이익을 남기려고 사업하는 것이지 인건비 벌어주려고 하는 것은 아니다 물론 인건비가 사업의 지출 명목에 중요한 포지션을 차지하고 노동가치에 부응하는 대가를 지불하는 것은 맞지만 그 합리적 선이 무너질 때 노사간의 관계는 붕괴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당초 품삯이란 주고 받는 당사자들이 노동의 난이도와 근무시간에 따라 자연스레 정해져야 유지, 발전되는 것인데 정치가 노사 간에 끼어들 때부터 이미 문제는 발생한 것이다. 중매쟁이나 심판이 어느 한쪽에 편파적인 과잉간섭을 한 자체가 문제다.

  • 	덕암 칼럼 세계는 전쟁 중
    덕암 칼럼 세계는 전쟁 중

    전면전을 벌어진 이란과 미국의 전쟁이 전 세계를 긴장시키고 있다. 한국도 호르무즈 해협의 봉쇄로 물류에 대한 2차 피해를 피할 수 없게 되고 장기간 이어질 경우 국내 경제는 심각한 타격을 받게 된다. 최근 지구촌 전쟁은 어디서부터 시작되었을까. 미중간의 패권싸움일까 아니면 이미 예견된 전쟁들이 때를 맞춰 벌어지는 것일까. 세부적인 원인을 나열하자면 지면이 10장이라도 모자란다. 어찌하든 이란, 이스라엘, 쿠바, 인도, 멕시코, 베네수엘라, 등 대류을 가리지 않고 화약연기가 자욱하다. 전쟁은 단순한 시설파괴나 인명피해로 끝나는 게 아니라 화염과 폭발로 인한 자연생태계 훼손, 물자, 국제 무역, 경제, 전란 지역의 문화재 파손, 등 다양한 손실을 가져온다. 안 그래도 각종 자연재해로 충분히 어려운게 현실이다. 문제는 남의 나라 예기할 게 아니라 대한민국의 안보다. 안규백 국방장관은 미군 사령부와 마찰을 일으키고 북한의 김정은은 한국을 대놓고 한국을 동족으로 인정하지 않겠다고 밝힌 것에 대해 야당은 대북정책을 짝사랑이라고 비난했다. 언제는 전쟁이 난다하고 났던가. 한반도에 전운이 감돌고 있다. 반면 우리는 어떤 준비를 하고 있을까. 당장 가까운 민방위 대피소를 가보면 안다. 북한의 대량 살상 무기인 화학전을 대비한 방독 마스크가 몇 개나 있는지, 지역 인구 대비 숫자는 물론이고 사용기간이 지난 무용지물만 있다면 국민의 안전은 누가 보장한단 말인가. 반면 전시 상태에 들어가면 소위 높은 사람들은 이래저래 피할 곳이 정해져 있다. 방공호도 마찬가지고 군 부대 수뇌부와 함께 작전을 짠답시고 누런 잠바 입고 현황판을 들여가 볼 것이며 결국 아무런 준비나 대책도 없는 국민만 적의 공격에 노출될 뿐이다. 오래전 필자가 초등하교 다니던 시절이었다 한 달에 한 번씩 민방위 훈련을 하면 비닐을 뒤집어 쓰고 싸이렌 소리가 다시 날 때 까지 기다리던 생각이 난다. 그리고 10년이 더 지나고 나서야 독가스와 화생방이 얼마나 무서운지 군 복무 시절에 알게 됐고. 지금 현재 상태가 얼마나 무방비, 무대책, 무책임한 상황이며 전쟁이 발발한다면 무색, 무미, 무취의 화학전에 노출되어 소리 없이 죽음을 맞이해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됐다. 과거를 돌아보면 몽골에서 오랑캐들이 쳐내려 왔을 때도 강화로 피신하다 불가 하자 남한산성으로 들어와 그나마 남아 있던 산성의 백성들까지 죄다 죽음으로 몰고 갔고 결국 종전 끝에 무고한 여성들만 머나먼 타국의 노예가 되어 환향녀로 불리지 않았던가. 2차 대전 때도 남자들이 지켜주지 못한 자국의 소녀들이 수 십 만명 씩이나 일본군 전쟁터의 성 노리개로 전락했으나 친일파는 지금도 대대손손 호의호식하고 산다. 1950년 동족상잔의 비극에서도 3년간 수백만 명이 죽어도 소위 높은 사람들은 살아남아 지금도 벼슬자리를 자식에게까지 물려주며 잘만 살고 있다. 그래서도 안되고 그럴일이 없기를 바랄 수밖에 없는 한반도 평화는 최선의 방어가 최고의 공격이라는 구호처럼 철통같은 국토방위가 유일한 방법이다. 그러함에도 총 한번 안 쏴본 현 방위 출신 국방장관은 한때 우방국이었던 미군과 날을 세우며 다툼의 소지를 제공하고 있다. 서해상의 출격을 두고 쓰네 다네 하는 것이 진정 자국의 안녕을 위함인지 적국의 비유를 맞추기 위한 것인지 명확한 입장을 밝혀야 한다. 이 모든 책임은 야당 국회의원의 함구도 한 몫 한 것이고 명령에 충성하면 벌을 받고 거역하면 상을 받는 현 상황을 저 하나 살겠다고 군인정신을 쓰레기통에 갖다버린 일부 군인들의 책임이기도 하다. 이제 어쩔 것인가. 지금 국제 정세를 보면 언제 중국이 대만을 삼킬지 일본이 이를 거들어 맞짱을 뜰 것인지. 그것도 아니면 트럼프의 기세에 눌린 북한이 미친 척하고 남침의 빌미를 찾아 전면전을 벌일지 그 누구도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이다. 지구촌의 유일한 분단국가. 적국을 적국이라 말하지 못하는 통일부 장관이나 여당 의원들의 꿀 먹은 벙어리 꼴을 보면 어렵사리 되찾은 나라를 어찌 지키려는지 아연실색 할 수 밖에 없다. 엊그제전한길 강사와 이준석 의원이 7시간도 넘는 토론을 통해 탁월한 결론을 내렸다. 문구상 결론이 아니라 국민적 공감대를 구했다는 것인데 실로 엄청난 시청율과 국민적 관심은 공중파 3사를 총동원해도 모자랄 만큼 높은 조회 수를 기록했다. 특히 삼일절 광화문 광장은 인파로 발디딜 틈이 없었다. 마치 이란 내부의 이념 대립, 기타 국가별 내전이나 전쟁을 벌이고 있는 나라들이 두 부류로 나뉘어 분열의 극치를 달리는 모습과 흡사하다. 국제사회흐름을 보면 지금 당장 한반도 전쟁이 나도 누구 하나 관심이나 지원군을 요청할 형편이 못 된다. 모두 저하나 살기 벅찬 상황에 누가 누굴 돕는단 말인가. 전쟁이란 승전국이 된다 하더라도 인명피해를 피할 수 없다. 상대방을 10대 때리다 보면 나도 2대는 맞게 된다. 지금 미국과 이란전을 보더라도 미군의 피해가 전혀 없다는 보장은 어디에도 없다. 한반도는 현대판 화약고다. 전쟁이 터지면 일반 국민들만 죽어나는 것이지 삼면이 바다인데 어디로 갈 것인가. 전기. 가스. 수도가 끊긴 고층 건물에서 할 수 있는 일은 전혀 없다. 필자가 멀쩡한 현실에 쓸데없는 공포심을 조장한다고 주장한다면 현재 진행 중인 전쟁 국가들을 눈으로 보고도 할수 있는 말인가. 언제는 난다 하고 났던가. 전쟁을 원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특히 전선에 나가 싸워야 하는 군인들은 더욱 그러하다. 현대전은 첨단 무기가 우선이다. 물론 북한처럼 핵무기 말고는 재래식 무기가 대부분이니 누구의 승리도 자신할 수 없지만 아무리 잘 싸워도 안 싸운 것 보다 못하다. 전쟁 억제, 과연 현실적으로 가능할까. 그렇다면 지금이라도 우산을 준비해야 한다. 비가 오면 늦다. 구름이 잔뜩 끼어있는데도 설마하며 아무런 대안이 없다. 쓸데없는 예산 낭비 하지말고 국민들 인원수에 맞게 방독면이라도 보급형을 나눠주고 가까운 대피소에는 기본적인 장비나 시설이라도 갖춰야 한다. 보험이란 질병이나 재해를 위해 금전적 손실을 알고서도 만약을 위해 가입하는 것인데 무슨 베짱인지 알 수 없다.

  • 덕암 칼럼 피할 수 없는 건 죽음과 세금
    덕암 칼럼 피할 수 없는 건 죽음과 세금

    사람이 살면서 사회를 구성하면 그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권리도 갖겠지만 버금가는 의무도 따른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세금인데 세금과 죽음은 그 누구도 피할 수 없다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 어디 국가에 내는 국세나 지방관청에 내는 지방세 말고도 주변을 돌아보면 돈을 내야 유지될 수 있는 모든 분야의 운영과정이 대동소이하다. 심지어 학교의 교실에서도 학급 반장이 학급비를 거둬 공금으로 사용하는가 하면 동창회에서도 회비를 내야 참석할 수 있다. 따라서 나라에 내는 세금은 부과 명분이 있어야 하는데 누구나 내야 하는 주민세부터 재산을 남기면 증여세, 물려주면 상속세, 갑근세, 부가가치세, 종합소득세, 법인세, 물건사면 취득세, 팔면 양도소득세, 이익이 생기면 사업소득세, 등 세금 종류만 해도 수 십 가지가 넘는다. 문제는 법대로 내면 그만인데 그렇게 했다가 세금 내다 볼일 다 본다는 말이 그냥 나오는 말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래서 세무서에 신고하는 방식이 서투르면 대행하는 것이 세무사다. 세법을 일반 사람들보다 더 잘 아니 절세하는 방법도 알고 심지어 탈세하는 방법도 안다. 기업주나 사업자 입장 에서는 세무사 관련 장부 기장료를 주더라고 그게 더 싸게 먹히니 맡기는 것이다. 탈세는 불법이지만 돈이 없어 못 내는 체납은 가산세만 더 내면 된다. 세금을 내고 싶어도 못내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돈이 있으면서도 아까워서 안 내는 사람이 있으니 체납에 대한 가산세가 붙는 것이다. 만약 가산세가 없다면 쓸 거 다 쓰고 남아야 낼테니 어쩌면 당연한 부과인지도 모른다. 이쯤하고 세금은 걷는 것도 중요하겠지만 걷는 것 못지않게 쓰는게 중요하다. 만약 정치인들에게 급여를 대폭 줄이고 공권력도 줄이고 분야별 업무만 준다면 그래도 지금처럼 자리 차지 못해서 안달일까. 일단 입성하면 온갖 갑질에다 거둔 세금으로 자신이 입지를 높이려는데 분탕질을 해대니 한번 권력을 잡으면 일명 기득권을 차지하여 온갖 방법으로 2선, 3선 심지어 5선까지 해 먹고도 모자라 정부 공기업으로 낙하산 타고 내려가 버티는 것이다. 이 내용에 대해 자유로운 정치인이 얼마나 될까. 사람이 박수 칠 때 떠나거나 물러날 때를 알고 물러나야 후배들의 진출 길도 열리며 그렇게 은퇴하는 뒷모습이 아름다운 것인데 욕심이 끝도 없다. 어쨌거나 죽을 때 까지 해 처먹으려고 국회의원들 국무위원으로 임명하여 한평생 연금타 먹게 하려는 것이다. 입법기관의 구성원이 행정기관의 장이 되어 양다리를 걸치니 국회에서 진행하는 청문회나 행정감사는 하나 마나인 것이며 동료의원들을 대상으로 한들 얼마나 할까. 지금까지 그래왔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며 이런 폐단은 고쳐지지 않을 것이다. 알아서 해먹는 걸 뭐라 하는게 아니라 정작 그 자리에 와야 할 인재들이 발도 못 들인다는 점이다. 그러다 보니 깜도 안되는 장관들 임명했다가 야당의 인신공격은 물론 케케묵은 자녀들 문제까지 들먹이며 국민들 염장을 지르다 중도하차 하는 경우도 수두룩하다. 자고로 세금은 걷는게 중요한게 아니라 어디에 어떤 명분으로 사용하느냐가 중요하다. 가령 천문학적 예산으로 국책사업을 벌였다가 애물단지로 전락하거나 실효성을 거두지 못해 방치된 현장들이 한 둘 이던가. 이용률이 저조한 공항도 그렇고 지방자치단체에서도 연말이면 멀쩡한 보도블럭 파헤치는 일이 연례행사처럼 벌어지고 있다. 낭비 사례를 열거하면 지면으로 수 십 장을 써도 모자랄 판이니 이쯤하고 오늘은 1973년 3월 24일 제정한 납세자의 날로서 국세청이 발족한 날이다. 당초 조세의 날이었는데 2000부터 납세자의 날로 변경됐으니 53회를 맞이하고 있다. 이날은 모범납세자를 선정하여 포상을 주는가 하면 포상 수상자에게는 2년간 세무조사를 면제해주는 혜택도 부여한다. 여기서 나온 단어가 세무조사 면제인데 3년째는 할 수 있다는 전제가 나온다. 세무조사,,,,,대한민국에서 사업을 하는 주체 즉, 개인사업자, 법인사업자, 중소 기업 대기업 등 사업자등록을 하고 수익을 위해 운영하는 모든 사람은 매출 대비 매입자료를 준비하고 분기별 부가세 신고 이듬해 종합 소득세 신고 등 납세조건에 맞춰 세금을 내야 한다. 제 아무리 대단한 사업체라도 세무조사라는 4글자 앞에 벌벌 떠는 것은 법대로 하기에 참으로 어렵다는 뜻인데 안걸리면 다행이고 여차하다 걸리면 이른바 대통령이 흔히 쓰는 단어중 하나인 패가망신 당하는 수가 있다. 검찰보다 더 무서운 세무조사, 고의적 탈세가 아니더라도 실수로 놓친 신고금액은 고스란히 탈세로 몰릴 수가 있으니 사업하는 것 못지 않게 세무관리가 중요한 것이다. 설령 신고를 잘해도 사업 이란게 운영하다 보면 적자가 나거나 미처 세금을 다 내지 못해 제때 내지 못해 밀릴수가 있다. 물론 없어서 못 냈더라도 밀린 만큼 가산세가 붙고 적용이율이나 고지 여부는 사인 간의 거래가 아닌 만큼 융통성이나 조절이 없다. 이후 절차는 징수에 관한 방법인데 여기서 개인적인 사정이나 형편은 납부와 무관하다. 일단 금융권 압류는 기본이고 부동산 압류, 자동차는 물론 각종 금융상품, 채권 등 찾아낼 수 있는 모든 재산권을 대상으로 한다. 야밤에 차량 번호판을 인식하여 체납 차량을 찾아내는가 하면 고속도로 톨게이트 입구에서 체납 차량을 수배하여 번호판을 떼는 것은 기본이다. 한국어 명사 중에는 가렴주구라는 말이 있다. 여러 명목으로 세금을 가혹하게 억지로 거두어 백성들의 재물을 무리하게 빼앗는 일을 뜻하는데 역사를 돌이켜보면 중앙관청은 물론 이고 지방으로 갈수록 토호세력이 백성들을 착취했던 흔적들이 수두룩하다. 특히 매관매직이 성행했던 시대에는 본전 뽑으려는 과정에 또 얼마나 백성들의 피폐함이 성행했던가. 지금은 안 그런가 공천을 돈으로 받아 권좌에 오르면 온갖 재주껏 빼먹는 일이 여전히 성행하고 있다. 세금을 내는 건 당연하지만 그 돈이 엉뚱한데 샌다면 왠지 뺐기는 기분이든다. 그래서는 안된다. 편성된 예산은 집행이 문제가 아니라 제대로 쓰였는지 관리 감독이 중요하다. 경인매일 회장 김균식

  • 덕암 칼럼 어용노조 어용야당
    덕암 칼럼 어용노조 어용야당

    약 35년 전 일이다. 당시 노동자의 권익이 바닥을 치고 있을 무렵 노조결성은 결코 쉽지 않던 시절이었다. 필자가 탄광도시 태백에서 광부들의 열악한 작업환경에 상당한 관심을 갖고 석탄산업합리화 정책에 반대하며 시민단체 활동을 하던 무렵 서울 도심에서도 노동자들의 집회가 끊이지 않았다. 대학가에는 경찰 최루탄이 연일 희뿌연 연기를 내뿜으며 시민들까지 기침을 멈추지 못하는 모습이 언론의 1면을 장식했다. 당시 군사정권을 막을 내리면서 노태우 정권이 시작되었으나 결국 그 나물에 그 밥인 권력이었다. 집회 과정에 자연스레 익히게 된 민중가요, 무노동 무임금, 동지가, 등 수 십 곡의 행진곡형 노랫말과 머리띠를 두르고 평등을 외치던 일이 필자 자신에 마치 정의의 선구자 마냥 착각하며 의기와 투지로 나날을 보내던 날들이었다. 그때 등장한 것이 어용노조였다. 회사 측이 노조설립을 사전에 차단하기 위한 방법으로 가짜 노조를 설립하여 정상노조의 출범을 막는 구조였다. 어쩌다 정상노조가 자리를 잡을 때면 회사를 구한다는 구사대를 고용하여 폭력으로 강제 진압하던 구시대적 산물, 세월이 40년 쯤이나 지난 2030년, 다시 정권을 누가 정권을 잡든 간에 권력을 비호 하기 위한 가짜 야당이나 시민단체가 들어선다면 단순히 회사 하나를 방어하는 게 아니라 국가 전체를 말아먹는 시대가 올 수 있다는 우려를 안 할 수 없다. 지금의 야당이 돌아가는 꼬락서니를 보면 충분히 그러고도 남음이 있다. 지방선거가 끝나고 다시 총선이 돌아오는 2028년, 국민이 어떤 선택을 할런 지는 두고 볼 일이지만 콘크리트 지지층을 기반으로 여당의 독주가 계속된다면, 그래서 제동기능을 잃은 초고속 열차가 국민 안위가 아니라 정권 유지의 목적지로 질주한다면 그땐 어쩔 것인가. 역사를 돌이켜 보건데 독재는 스스로 정화장치를 마련하지 않는 한 부패할 수밖에 없다. 여야를 떠나 지금까지 당선 전과 당선 후의 모습이 달라지는 건 이미 광복 이후 국회의원 특권 폐지가 지켜지지 않은 것만으로 충분히 입증됐다. 당연히 자정 기능을 마련한다는 건 고양이에게 생선의 맛을 포기하란 것보다 더 어려운 일이다. 필자가 우려하는 어용 야당은 겉모양은 야당인데 하는 짓이 여당보다 더 여당의 속내를 갖춘 정치인들이다. 야당의 역할은 여당에 대한 견제장치이자 건전한 정치 발전의 양대산맥으로서 선의의 경쟁까지 만들어낼 수 있는 정치 구도다. 따라서 여야 간의 이견 차이는 발생할 수 밖에 없으며 이견과 대립은 그 폭이 클 수 밖에 없다. 이견은 같은 안건이라도 서로 다른 견해를 통해 다양함을 구할 수 있으나 대립은 각자의 주장만 강조하며 국론을 양분시키고 국민들의 삶을 피폐하게 결과를 초래한다. 대립으로 인한 폐단은 이미 조선 시대 이전부터 늘 존재했다. 서인동인, 남인 북인, 노소갈등과 양반 평민, 상놈이란 계급사회가 그러했고 식민지 시대에도 친일과 반일, 지금은 영, 호남이 지역갈등, 남녀 갈라치기와 고용인과 피고용인으로 찢어 놓음으로서 다수의 표를 얻을 수만 있다면 그 어떤 분열이나 갈등도 조장하는 시대에 도래했다. 지금은 스마트폰으로 지구 반대편 밀림지대 숲속까지 볼 수 있는 시대임에도 여전히 이런 계층 간 갈등은 해소되지 않고 있다. 필작 참으로 염려하는 대목은 이 부분이다. 이견이나 대립 정도가 아니라 어용 야당이 우후죽순처럼 생겨나 진정한 견제세력이 없는 세상, 야당같은 여당이 한둘이 아니라 수십개 창당하여 여당 스스로가 만든 야당이 판을 치게 된다면 국민들의 선택은 어디로 갈까. 지금 돌아가는 판세를 보면 충분히 그러고도 남음이 있다. 파랗던 색깔이 붉은색과 구분되던 지금은 도 아니면 개라도 선택하겠지만 절대 권력을 가진 파란색이 만든 붉그스럼한 색의 야당, 오렌지색 야당, 분홍빛 야당이 생겨난다면 파란색 철옹성은 절대 권력의 위치를 고수할 수 있다. 필자는 권력에 대한 독주를 우려하는 게 아니다. 독재도 잘만 하면 국력을 강화 시키고 국민들의 화합을 유도하여 보다 살기 좋은 나라로 만들 수 있다. 과거 박정희 전대통령 당시 무슨 자유와 인권이 보장되었던가. 그래도 한강의 기적을 낳았고 국민들은 국익 중심의 정책에 애국관이 투철했다. 이제는 달라졌다. 자유와 문명의 발달에 길들여진 국민이다. 과거마냥 하란다고 하는 국민이 아니고 갈라치기에 익숙해진 국민들이다. 미끼로 달래는 것은 한계가 있는 것이고 끝없는 욕심을 채워주지 못하면 인내로 표를 주지 않는다. 그래서 야당의 출범이 두려운 것이다. 여당 독주의 세상에서 얼핏 보면 국민들 편을 들어주는 것 같은 착각을 일으키는 군소 야당들의 출범은 민과 관 사이에 기생하며 예산만 축내는 어용시민단체들과도 같은 존재이기 때문이다. 본질을 망각하고 권력에 기생하며 매년 막대한 예산을 갉아먹고 사는 기생충들이 정작 나서야 할 자리에는 눈치만 보며 숨죽이고 안 나서도 될 자리에는 촛불과 횃불을 켜며 목소리를 높이는 부류들이 지금도 판을 치고 있다. 어용 야당은 그러한 맥락에서 볼 때 권력 보좌의 2중대가 되어 온갖 명분으로 세금 축내며 마치 국민의 의지를 대변하는 양 목소리를 높인다면 그때는 무슨 대책이 있을까. 감히 그런 기형적 성장을 누가 막을 것이며 누가 옳고 그름을 판단할 것이며 누가 앞장설 것인가. 지금도 수 천 개의 단체가 국민 세금을 축내며 기생하고 있는 판에 더하면 더했지 덜할 것이 없다. 어쩌면 2026년 지금의 국민의 힘이 그나마 붉은 색 야당의 대표적인 모습으로 남는 마지막 진짜 야당일지도 모른다. 윤석열 전 대통령의 계엄령이 마지막 발악의 포효로 여 야라는 정치적 구도의 끝 자락 일수도 있다. 두번씩이나 대통령을 배출하고도 지키지 못했던 야당이다. 그리고 스스로 서로가 배신을 밥먹듯한 야당이다. 여당의 독주를 지켜볼뿐만 아니라 뒤로 거드는 야당이다. 역사는 흐른다. 누가 어떤 흔적을 남기느냐가 후손들에게 귀감 내지는 오점을 번복하지 않는 참고사항이 될 수 있다. 대한생활체육회 회장 김균식

  • 	덕암 칼럼 호랑이와 고양이
    덕암 칼럼 호랑이와 고양이

    고양이가 어쩌다 운이 좋아 호랑이 굴에 들어간다고 호랑이가 될까. 야옹하는 울음소리를 어흥 하는 소리로 바꿀 수 있을까. 그리고 동네 양아치가 삭발한다고 하루아침에 스님이 될까. 목탁도 쳐본 중이 치는 것이고 고기도 먹어본 자가 먹는다 했다. 강도 손에 쥐어진 칼은 결코 음식을 조리하는데 사용하지 못하고 결국 밑천이 드러나 금품을 갈취하는데 사용 되고 만다. 한 가지 더 덧붙이자면 예배당 종이나 사찰에 걸린 종은 크기만큼 웅장하거나 땡그랑 거리는 소리를 낸다. 방울은 아무리 흔들어도 딸랑거리는 소리가 나는 것이지 에밀레종처럼 그윽한 소리를 낼 수 없다. 필자는 기자 생활을 하면서 많은 후배들과 학생기자단, 시민기자단을 양성한 과거가 있었다. 그때마다 한결같이 강조한 것은 기자가 되기 전에 인간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인성이 갖춰지지 않은 사람이 기자를 하게 되면 언론이라는 사명감도 없을 뿐만 아니라 자칫 펜이 칼보다 무서운 흉기로 남용되어 프레임 뉴스나 가짜뉴스를 양산하게 되며 종래에는 선의의 피해자가 생기고 자신도 낭패를 겪게 된다고 항상 강조했었다. 다시 말해 어울리지 않는 자리에 앉거나 감당하지 못하는 왕관을 쓰면 그 무게를 견디지 못하고 결국 당사자와 주변 모두가 힘들게 된다는 논리다. 행정직에는 동네 이장과 통, 반장, 면장까지는 임명직이지만 군수, 시장 도지사, 대통령까지 국민 손으로 선출되어 국민을 위하여 봉사하고 국민의 복리 증진에 힘써야 하는 공무원이다. 비단 어느 누구를 지목해서가 아니라 직위란 직위에 걸맞는 실력과 인품, 그리고 정치적 철학이 분명해야 태평성대를 일구는 지도자가 되는 것이지 개인적인 탐욕이나 사리사욕, 권력욕으로 점철된다면 그 야욕의 밑천, 곧 드러나고 종래에는 권불십년이라는 진리에 무릎을 꿇게 된다. 과거에야 강화도에 꽈리를 틀고 앉아 100년도 해먹을 수 있었지만 지금은 다르다. 이미 자유에 길들여지고, 게을러지고, 거만해지며, 국가가 해주기만 바라고 있는 습관에 젖어 있으니 인간의 본능 상 더 쉬어야 조용하지만 어려우면 난리가 날 것이다. 먼저 자만심과 자부심의 차이는 참으로 크다. 유사한 단어 같지만 자만심은 자신감이 넘칠 경우 발생하는 정신적 질병이다. 조절만 잘하면 스스로 긍지를 느껴 공익에 대한 보람을 느끼는 것이 자부심인데 스스로 자부심이라 하고 남이 볼 때 자만이면 자만인 것이다. 문제는 자만이 넘치면 거만이 되고 거만이 넘치면 눈에 뵈는게 없다는 점이다. 가령 군대도 안 가본 사람이 국군 통수권자가 되는 것까지는 법의 테두리 안에 있으므로 가능하지만 군 체계에 대한 상식과 시스템에 대한 이해가 부족함에도 이를 직위라는 권좌에서 조직폭력배 다루듯 한다면 명령에 복종하던 군 복무의 특성상 자칫 엄청난 위력이 적군이 아니라 국민을 향할 수도 있다는 점이다. 어디 국방뿐일까. 정부가 국민 세금으로 운영되는 막대한 예산, 장비, 전문인력이 국민을 향하지 않고 권력을 지향할 경우 이는 심각한 국난에 봉착하게 된다. 모르는 건 죄가 아니다. 하지만 모르면서도 아는 척하거나 자신의 입맛에 맞지 않는다고 핀잔을 주고 면박을 주고, 거드름을 피운다면 이는 직권남용이요, 한 평생 관련 분야를 지켜오던 많은 종사자들의 전문성은 하루아침에 추풍낙엽이 되는 것이다. 사람과 동물의 차이는 말과 글을 쓴다는 것이다. 지금이야 영상도 있고 인공지능도 포함되지만 말은 발언자의 인격과 맞물려있다. 일상에서 사용하는 언어도 격이 있으며 입에 베인 말버릇은 쉽게 고쳐지지 않는다. 앞서 어필하였듯 고양이는 절대 호랑이 소리를 낼 수 없고 방울은 종소리를 낼 수 없는 것과 같은 이치다. 동네 이장과 군수는 말의 격이 다르다. 군수와 대통령의 말의 격도 다르며 조폭과 스님이 말은 어순이나 적용하는 단어나열 자체가 다르다. 옛말에 제 버릇 개 못 준다는 말이 있다. 사람이 태어나고 자라면서 보고 배운 게 없다면 성인이 되어 티가 난다. 제멋대로 자란 아이와 부모로부터 엄격한 가정교육을 받고 자란 아이는 다를 수 밖에 없다. 물론 후천적으로 자수성가하여 학문에 정진할 경우 다를수도 있지만 한번 길들여진 말의 습관은 쉽게 고치기 어렵다. 간혹 영화의 한 장면, 폼 나는 말, 일명 뽀대 나는 말, 거드름을 피우며 건들거리는 동네 건달들의 용어가 있다. 골목길을 어슬렁거리며 선량한 시민들을 대상으로 삥을 뜯는 양아치가 쓰는 단어와 정상적인 사회생활을 하는 직장인, 학생, 일반 시민들의 단어는 전혀 다르다. 전자는 건들거리며 상대방을 얕잡아 보고 트집 잡듯이 말하다가 듣기 싫으면 면박을 줘서 막아 버리지만 후자는 상대방의 말을 경청하고 걸맞는 답변으로 대화를 이어간다. 특히 갑의 위치에 있다면 더욱 신중을 기하고 을에 대한 입장을 고려하는 배려가 있어야 한다. 가령 군부대 상급자가 하급자를 대할 때 온갖 개폼을 잡고 건들거리며 시비조로 말하는 것과 계급에 걸맞게 정중하고 반듯하게 말할 때 하급자들은 존경과 복종의 예를 갖추게 된다. 그래서 말은 급과 격이 있는 것이고 인격과도 맞물려 있는 것이다. 필자 또한 청소년 시절 온갖 욕설과 폭력의 환경속에서 험한 꼴을 수 백 번 봐왔고 군 복무 시절에도 위병소와 자체 헌병대 요원이 되어 살벌한 환경을 거쳐왔지만 지금까지 누구에게 욕설이나 인격모독을 해 본적이 없다. 정작 마음이 상할때면 피해 버리고 말지 굳이 싸움을 벌이고 싶지않은 것이다. 문득 영화 “친구”에서 나온 대사 중 동수역을 맡은 장동건이 준석역을 맡은 유오성에게 내가 니 시다바리가, 하니 준석이가 이기 죽고 싶냐며 눈을 부라린다. 그리고 중간 쯤에 다시 준석이 동수에게 잠시 하와이로 가 있으라 하니 동수가 “하와이 니가 가라”고 한다. 목소리를 깔면서 서로에 눈빛으로 기 싸움 하는 장면이 있다. 말에는 기가 실려있다. 그래서 부패한 검사나 경찰이 참고인을 윽박지르며 겁을 주거나 살살 달래서 기망의 수사를 하는 경우, 그것도 아니면 국회에서 참고인의 답변을 겁박하여 입도 뻥긋 못하게 하고 소리만 요란하게 지르는 장면은 국민 들에게 설득력을 얻지 못하는 것과 같다. 추궁하고 소리 지르고 질책하는 사람은 과연 그 자리에 오를 때 까지 티 없이 맑은가 털어서 먼지 안날까. 내분하는 국힘, 질주하는 여당, 천지지지요 자지아지라 했다. 하늘이 알고 너와 내가 아는데 무슨 비밀이 있을까. 쑈를 해라 한 푼도 안 받았다고 하고 1억 줬다고 하고 지금 국민들을 죄다 호구로 본 게 아니라면 저러지 못한다. 그냥 입 다물고 가만있으라. 상대방의 말을 경청하지 않고 갑의 위치에서 갈구듯 말하는 말투는 자리에 걸맞는 단어를 사용함으로써 수준을 갖출 수 있다. 하는 사람이나 이를 보고도 만류하지 않고 방치하는 사람 모두가 언어 피해자 입장에서는 공범이다. 언어폭력이란 말로 인한 상실감도 포함되는 것이며 마음의 상처는 칼로 베인 몸의 상처보다 더 깊고 오래간다. 패가망신이란 국어사전에서 집안의 재산을 다 써서 없애고 신세를 망친다는 것을 뜻인데 동네 양아치나 폭력배들이 약자를 겁박할 때 주로 사용하는 단어다. 절기상 우수를 맞이하는 아침은 제법 포근하다. 사람이 사람을 대할 때면 오늘처럼 포근한 마음이 동반되어야 한다. 안산인터넷뉴스 대표 김균식

  •    덕암 칼럼 당뇨와 알고리즘의 공통점
    덕암 칼럼 당뇨와 알고리즘의 공통점

    당뇨병 환자가 초고령 사회 진입을 앞두고 빠른 속도로 증가하고 있다. 2022년에 600만 명이나 기록했는데 이는 2050년 쯤에나 예측했던 숫자다. 고위험군인 전 단계는 1500만 명을 찍었고 국민의 40%가 넘는 2,000만 명을 코앞에 두고 있다. 당뇨측정 과정에서 당화혈색소는 3개월간 평균적인 혈당수치를 나타내는 것으로 6.5% 이상이면 당뇨로 진단한다. 문제는 고령 노인에게서나 볼 수 있었던 환자 분포도가 30-40대 까지 확산 되는가 하면 이제는 MZ세대까지 유병률이 급증하고 있다는 점이다. 인슐린의 분비량이 부족하거나 정상적인 기능을 하지 못해 혈중 포도당 농도가 높아져서 소변으로 배출하는 증상을 당뇨는 한번 걸리면 좀체 완치가 불 가능한 질병이다. 꾸준한 운동과 식생활개선은 물론이고 정기적인 검진과 투약, 심지어 인슐린 주사까지 맞아야 하는 고질병이다. 이미 관련 분야에서는 당뇨병 2차 대란 위기가 오고 있다는 우려를 표하고 있으며 사회문제로 확산되어 예방조치가 시급하다는 지적이다. 당뇨병에 걸리면 일단 심한 갈증과 함께 소변에 거품이 일면서 배출량도 늘어나고 쉽게 피로를 느끼는가 하면 상처가 나도 평소보다 더 늦게 아문다. 만병의 근원이라 할 만큼 시력상실까지 불러오는 당뇨는 각종 합병증을 유발하는데 10년 이상 앓았을 경우 98%까지 망막병증으로 고통을 받게 된다. 소리없는 침묵이 살인자로 소갈증세를 보이면 일단 수분공급이 응급조치나 마찬가지다. 피가 끈적해지는 경우인데 이를 조금만 방치하면 쓰러질 수도 있다. 피할 수 없으면 즐기라 했던가. 당뇨에 대한 두려움과 설마했던 진료결과에서 유병 여부가 발견되면 인정해야 한다. 그리고 당뇨 수치를 낮추려는 노력이 수반될 때 평생달고 가야하는 친구로 여겨야 한다. 아직은 완치 약물이 없지만 의료기술의 발달로 곧 개발될 것이라는 희망을 갖는게 차라리 나은 편이다. 그리고 일종의 차단기 역할을 한다고 보면 된다. 유병 증세가 발생하면 이는 음식조절과 꾸준한 운동이 필수적인데 안 해도 될 여러 가지 노력이 수반된다. 무리한 도전도 신중히 해야 하고 점차 말라가는 마른 당뇨의 경우 표정 관리조차 잘 안 되는 경우도 있다. 뭐든 조심해야 하는데 이래서 나온 말이 골골백세라 한다. 잘만 관리하면 100세까지 간다는 뜻이다. 건강하다고 함무로 먹고 마셨다가 어느 날 갑자기 운명을 다하는 게 아니라 평소 질병이 신체적 관리를 신중히 하게 되는 동기가 되다 보니 각종 사고나 질병으로부터 경계심이 심해진다는 것이다. 긍정의 힘은 이런 부분에서도 적용된다. 한번 걸리면 절대 떨어지지 않는게 또 있다. 당뇨는 의료계에서 진료와 치료도 할 수 있지만 검진결과 에서도 알 수 없는 병, 이른바 알고리즘이다. 이미 스마트폰 중독에 대한 문제점은 심각한 사회적 질병으로 손꼽힌지 오래다. 청소년들에게는 관련 치료법까지 등장할 정도니 말해서 뭐하랴. 이미 전 세계적으로 미성년자들의 검색범위를 줄여야 한다는 목소리가 빠른 속도로 확산되고 있다. 인간관계의 먹통시대, 게임중독은 물론, 무분별한 폭력성, 음란물 구독은 비정상적인 사고를 갖게 되는 동기로 작용하여 범죄률 증가로 이어지고 있다. 대한민국 청소년 10명 중 4명은 스마트폰 과의존 위험군에 속한다는 발표가 이를 증명하고 있다. 국가 데이터처 발표에 따르면 2016년 30%이던 비중이 2025년 43%로 증가할 만큼 빠른 속도로 확산되고 있다. 하기야 부모들부터 틈만 나면 스마트폰만 쳐다보고 있으니 누가 누굴 나무랄 수 있을까. 한번 빠지면 못 헤어나오는 것은 당뇨병이나 스마트폰 중독이나 공통점이 있다. 당뇨가 예측 가능하거나 진단으로 알 수 있는 질병이라면 스마트폰에서 작용하는 알고리즘, 일명 추천, 규칙의 기능은 구독한 영상과 관련된 유사영상들이 꾸준히 연결되면서 관심 분야에 대한 추가 영상으로 쉽게 벗어나지 못한다. 청소년들의 성에 대한 호기심은 자칫 돌이키지 못한 성범죄로 이어지고 젊거나 중년까지는 경제적 창출에 대한 영상이 나이가 들면서 건강 분야에 대한 관심을 해소해 주니 당연히 한번 빠지면 헤어날 수 없는 것은 공통점이다. 가장 큰 문제는 알고리즘의 작동이 스마트폰 중독의 주 원이라는 점이다. 꼭 필요한 정보만 보고 마는 것이 아니라 유사한 관련 영상이 끝도 없이 접목되니 관심은 관심을 불러 1-2시간을 쉽게 넘기게 된다. 정보의 홍수는 가짜 뉴스도 생성되어 판단의 오류도 가져올 뿐만 아니라 정작 필요한 선을 넘게 된다. 이러한 증상은 AI가 도입되면서 현실적으로 삶의 질적 변화까지 우려된다. 여기서 우려란 단어를 적용하는 것은 지금까지 구독하던 영상들의 환경이나 수준이 상상 그 이상으로 발전되기 때문이다. 이제 사람이 영상을 만들거나 좋은 글을 올리는 시대가 지났다. 원하면 무슨 영상이든 만들어 낼 수 있는 시대, 쳇GPT가 모르는 게 없을 만큼 많은 정보를 언제 어디서든 제공하니 인간이 가진 지식이나 경험은 점차 뒤로 밀릴 수밖에 없다. 이제 연륜이나 경륜을 자랑하거나 어려운 산술적 문제, 전문가들만이 공유하던 그들만의 정보, 특히 딥페이크로 인한 폐단은 더욱 심각하다. 이제 누구든 마음만 먹으면 다양한 방법으로 특정인을 범죄자로 몰 수도 있고 음란물과 합성하여 돌이킬 수 없이 치명적인 상처도 입힐 수 있다. 여기에 대한 관련 법규의 개정안은 발생하는 범죄속도의 변화를 따라 올 수 없는 게 문제다. 대안 마련이 시급하다. 지금이라도 청소년들 스마트폰의 사용범위를 제한해야 한다. 온라인에 미처 있는 만큼 오프라인의 참여, 관심, 이용이 감소했다. 상상 속의 가상현실이 실제 현실과 구분되지 못할 정도에 이르면 아이들을 구제하기에 늦는다. 문제가 심각함에도 여의도에서는 여전히 싸움 소리가 그치지 않고 있다. 말만 국민을 위한다면서도 정작 미래세대들의 뇌가 병들어가는 심각함은 무감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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